《수십t에 이르는 거대한 덮개들의 무게를 떠받친 몇 개의 작은 굄돌. 수천년 풍상을 고스란히 견뎌낸 균형의 미학이 놀랍고 신비스럽다. 청동기시대 거석문화 유산인 고인돌 무리를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이땅에 뿌리내린 아득한 옛날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인돌이 있는 가을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돌로 괴어 만든 무덤’이라는 뜻의 순수 우리말인 고인돌(지석묘)은 한반도에 무려 1만5000여기가 산재해 있다. 모양도 용머리, 두꺼비, 거북 등으로 다양한 데다 돌마다 세월의 흐름과 역사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보듬고 있어 고인돌을 보고 있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청동기시대 한 부족의 족장으로 되돌아온 느낌마저 든다. 당시 선사인들은 종족을 지키고 영토확장을 위해 타부족과 수많은 싸움을 벌였다. 돌칼을 휘두르며 치러진 전투에서 승리의 쾌감도 맛보았겠지만 때로는 족장을 잃은 고통도 당했을 것이다. 슬픔에 휩싸인 부족은 족장의 영혼을 빌며 힘을 모아 이 고인돌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화고인돌은 보존과 규모 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되면서 일반인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강화군에는 127기의 고인돌이 몰려있다.》
▽강화 지석묘(사적 제137호)〓강화읍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인화리 방향으로 5㎞가량 떨어진 하점면 부근리 317 국도변 고인돌공원 내에 있다.
이 고인돌은 높이 2.6m, 길이 7.1m, 폭 5.5m이며 덮개석의 무게만도 80여t으로 남한지역 탁자식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인돌 주변에는 짚으로 만든 움집과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보여주는 모형물이 설치돼 있다.
▽부근리 고천리 고인돌군〓고려산(436m)의 북쪽 봉우리인 시루미산 끝자락에는 부근리 고인돌군이, 정상 서쪽 능선에는 고천리 고인돌군이 있다. 산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은 모두 34기로 고천리 고인돌군 주변에는 고인돌용 돌을 채석(採石)한 흔적이 있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교산리 고인돌군〓강화도 최북단의 별립산(340m) 북쪽 능선 해발 100m 지점에 북방식과 남방식 고인돌 무덤 11기가 흩어져 있다.
축조시기는 기원전 7∼8세기쯤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초기 고인돌 형태로 강화 고인돌 무덤 중 제일 북쪽에 있다.
▽오상리 삼거리 고인돌군〓오상리 고인돌군은 고려산 서쪽 낙조봉 하단부 구릉 능선상에 12기가 군집해 있다.
이중 내가지석묘는 덮개돌이 잘 갖추어진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 무덤으로 석실구조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원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7m, 폭 3.35m, 두께 0.5m이며 이곳의 고인돌 무덤은 북방식과 남방식이 공존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또 다른 고인돌군과 마주친다.
북방식 고인돌 9기가 능선을 따라 일렬로 분포되어 있는데 이 곳에서도 고인돌을 채석한 흔적이 보이는 채석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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