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산정의 산성터를 온통 뒤덮은 억새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대학 시절, ‘으악새’도 이름이 좀 특이한 뭇 새 가운데 하나쯤으로 여기고 한 사발 막걸리로 한껏 돋운 쌩쌩한 목청으로 소리소리 뽑아대던 대중가요 가사 중의 ‘으악새’. 훗날 그것이 가을이면 이 강토 어디서나 피는 흔한 ‘억새’의 경기지방 사투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느꼈던 그 황당, 당황, 계면쩍음과 망신스러움이란….
이 땅의 술마시는 남정네 치고 이 노래 한 번 안 뽑아본 이 없을 터이고 남녀에 노소를 불문하고 겨울로 치닫는 계절의 길목에서 솜털 푸근한 억새 한 번 보지 못한 이 없을 터. 그럼에도 가을만 오면 누구랄 것 없이 억새를 찾아 가을바람에 이리 눕고 저리 일어나는 억새 풍성한 산, 들 찾아 부산을 떠는 것은 왜 인지. 허다한 가을산 억새밭 놔두고 유독 화왕산에서만 억새가 나는 것처럼 예까지 발품파는 수고도 마다않고 찾아들 오는 이유는 또 뭔지.
지난 주말, 창녕 우포늪에서 한눈에 올려다보였던 화왕산(해발 756.7m·경남 창녕군)의 억새평원을 찾았다. 난공불락의 철벽요새를 연상케 하는 장대한 바위절벽의 정상.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이곳 폐성터에 돌벽을 쌓고 결사항전에 임했고 왜병장 가토 기요마사가 그 위세에 눌려 우회했다고 전해지는 그 성터가 있는 곳이다.
화왕산 억새평원은 산성이 들어선 정상의 분지형 지대(5만6000평 규모)에 있다. 그곳을 향한 길. 창녕읍내에서 정상 아래 절벽바위로 오르는 가파른 자하골 등산로(계단) 대신 쉬엄쉬엄 가을산경을 오감으로 즐기며 여유있게 오를 수 있는 반대편의 ‘옥천동(매표소)∼관룡산∼화왕산’ 코스(6㎞)를 택했다.
이 코스는 1시간이면 오르는 자하골과 달리 3시간 정도 걸리는 좀 긴 코스. 그렇지만 도중에 여러 볼거리가 있어 지루하지 않다. 물좋은 옥천의 계곡, 원효대사가 제자 1000명 앞에서 화엄경을 설회한 천년고찰 관룡사(觀龍寺), 결가부좌한 석가여래(석불좌상)가 절벽의 바위에서 1000년이 넘게 염화시중의 미소 띤 얼굴로 절과 세상을 두루 굽어보는 전망좋은 용선대(龍船臺) 등등….
관룡산 산허리를 타고 찾아간 화왕산 정상. 산성의 돌벽(동문)을 지나니 발 아래로 거대한 화산분화구처럼 보이는 광활한 분지가 펼쳐졌다. 그 곳은 솜털꽃 화들짝 피운 억새가 군락을 이루며 온통 뒤덮고 있었다. 예가 바로 화왕산 억새평원이다.
새로 쌓은 산성의 돌벽은 분지외륜의 마루금을 타고 정상으로 이어졌다. 그 안벽 아래 분지는 온통 엷은 베이지색 억새로 뒤덮였다. 건듯 부는 가을바람에 숲을 이룬 억새가 길게 누웠다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느린 듯 넉넉한 움직임, 홍학의 군무처럼 우아했다. 줄기 끝에 화사하게 피어난 억새의 솜털무리가 태양의 각도에 따라 쉼없이 빛깔을 바꿨다. 때로는 은빛으로, 때로는 금빛으로 물들며 억새의 바다에서 빛의 물결을 일으킨다.
분지를 가로질러 건너편의 직벽코스 등반로 입구까지는 1.1㎞. 그 길을 따라 분지바닥의 억새밭에 들어서니 키 넘긴 억새에 몸이 파묻혔다. 억새밭이 아니라 억새숲이라고 해야 옳을 정도다. 억새평원을 가로질러 다다른 직벽코스 등반로의 끝인 벼랑 위. 화왕산 아래 깃든 비사벌(창원의 신라 때 지명)의 창녕읍내, 우포늪과 낙동강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아이맥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두 눈에 담기 어려울 만한 장쾌한 장면이다.
13일 ‘화왕산 갈대제’가 열릴 곳은 여기 억새평원. 해질녘 황혼에 물든 억새밭 비경을 감상한 뒤 오후 7시에 개막된다. 어둠에 덮인 억새평원을 횃불로 수놓을 횃불행진이 볼 만할 거란다.
트레킹 후에는 자동차로 20분 거리의 부곡온천에서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었다. 용출수 온도가 섭씨 78도나 되는 이 곳은 독립 후 한국인에 의해 발견, 개발된 첫 온천. 최초의 온천탕은 원탕 고운호텔(055-536-5655)에 있다. 창녕읍내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 4000원.
▼식후경/토종 청국장에 겉절이 넣고 '썩썩'▼
창녕은 우리나라 송이산지 중 남단. 화왕산 자락의 옥천리가 주산지다. 그러나 올 송이는 봄가뭄과 긴 여름 탓에 ‘금값’(㎏당 30만원). 그래서 창녕까지 갔다가 ‘송이 닭백숙’은 포기했다.
대신 찾은 곳은 계성면의 ‘청국장 마을’(옥천점). 손으로 빚은 메주를 띄워 담근 된장과 청국장 간장 등 전통 장류로만 음식을 내는 전통음식점이다.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된장 청국장 고추장 간장 집장(막장)만 쓰지요.” 여주인 김향숙씨(36)의 말이다.
이 식당의 간판 상차림은 ‘청국장 비빔밥’(4000원). 도자기 그릇에 음식을 담아 내는 상차림은 ‘화려(華麗)’의 수준. 반찬 그릇 7개(11가지)에 장이 세 가지(고추장 된장 집장)다. 보글보글 뚝배기에 끓여 내는 청국장이 나오면 식사개시.
밥 위에 된장양념으로 버무린 정구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 등 야채 겉절이를 넣고 청국장과 함께 비볐다. 그 맛, 송이에 비길 수야 없을 테고…. 그래도 송이천지 옥천동의 싱그러운 산내음에 부족함이 없는 산중별미다. 이 집 마당의 등나무 아래 평상에서 가을 익어가는 소리를 들어가며 먹으면 더 좋지 않을까. 깔끔한 식당 안팎만큼 반찬 맛과 상차림도 담백하고 정갈했다.
계성삼거리∼옥천매표소(1080번 지방도)의 중간쯤. 명절만 빼고 무휴. 개점 오전 10시∼오후 10시. 점심때(정오∼오후 2시)는 붐빈다. 055-521-3337, 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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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억새 축제
행 사
지 역
날짜(일)
문 의
제주 억새꽃축제
제주시
13∼15
064-742-8861
명성산억새꽃축제
경기 포천군
13, 14
031-532-6104
천관산 억새제
전남 장흥군
21
061-860-0224
민둥산 억새풀 등반대회
강원 정선군
21
033-560-2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