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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스스로 실수가 용납안돼"

입력 | 2001-10-11 18:24:00


30대 초반의 회사원 김모씨. 소심, 꼼꼼, 치밀함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무슨 일을 하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가계부(물론 그는 가계부를 쓴다. 아직 독신이니까? 그럴 지도. 하지만 결혼한다 해서 그가 그 일을 아내에게 넘겨줄 지 어떨 지는 아직 그 자신도 잘 모른다)를 쓸 때도 10원짜리 하나까지 딱 떨어지게 맞아야 한다. 덕분에 회사에서 상사들의 신임이 대단하다. 이건 분명 장점이다.

그 대신 그는 자기 생각에 ‘이건 실수다’ 싶은 일은 결코 잊지 못한다. 밤에 잠자리에 들어 하루 일을 필름처럼 돌려가며 사람들을 만나 실수한 건 없나 살펴보는 것은 그의 오랜 버릇이다. 그러다 작은 것이라도 꼬투리가 잡히면 그 때부터 화들짝 잠이 깨며 길고 긴 고민이 시작된다.

대체 왜 그랬을까? 왜 하필 그 순간에 그런 쓸데없는 말을 떠들었을까? 상대방이 날 얼마나 우스운 놈으로 여겼을까? 그랬다면 적어도 표정에 나타났을 텐데, 왜 그런 기미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상대방은 시침 뚝 떼고 날 마음껏 비웃었을 테지. 다음 번에 어떻게 오늘 실수를 만회하지? 뭐라고 변명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잠자코 있어야 할까? 등등. 그의 이 ‘필름 시사회’는 하도 정밀해서 머리카락 하나 놓치는 법이 없다.

덕분에 그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은밀한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렸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자기혐오는 또 어떤가? 이건 그의 성격이 초래한 가장 큰 단점이다.

그런 신경증적인 경향을 고치기 위해 그는 단계별로 합리적 감정훈련을 받아야 했다. 이 훈련과정에서 중요한 목표의 하나는 과학적 사고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과학적 사고란 현실이나 인간관계에는 두 가지 면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게 서로 모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걸 뜻한다. 반대로 비과학적인 사고는 현실이나 인생에서 절대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따라서 쉽게 우울, 불안, 자기혐오의 감정에 빠진다.

과학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두고도 “그래, 난 이번 일에 실수했어. 사람들이 날 비판한다 해도 받아들일 거야. 대신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해선 안되겠지”하고 생각한다. 따라서 감정적으로도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자기혐오에 빠지는 정도가 훨씬 덜하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는 만큼 느낀다. 자기의 생각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키워갈 때, 감정적으로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같은 성격도 장점이 단점을 보완하는 훌륭한 팀워크(?)를 갖출 수 있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