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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재의 영화이야기]불효자의 거리 충무로

입력 | 2001-10-11 18:32:00


불효 자식들이 유독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영화판이라는 충무로 농담이 있다. 남들은 우스개 소리로 여기겠지만 영화쟁이들에게는 가슴을 후벼파는 아픈 이야기다.

충무로에는 오로지 영화를 하겠다는 고집으로 부모와 아내,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온 이들이 적지 않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요즘 개봉 중인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39). 그는 연세대 철학과를 나와 대기업 홍보실에 근무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그럭저럭 잘 나가던 그는 91년 회사를 그만둔 뒤 영화아카데미의 학생이 됐고 5년간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각고의 세월을 보냈다.

나는 아들 때문에 속 깨나 썩었을 허 감독의 부친이 흐뭇한 표정으로 그의 영화를 지켜보는 모습을 영화관에서 여러번 목격했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외국어대 81학번인 나는 대학 졸업 뒤 옷도 팔고 레스토랑도 운영하면서 86년경 대충 2억원 이상을 모았다. 자화자찬 같지만 20대 중반의 나이에 그 정도 수완이면 사업가로서 ‘싹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도 영화에 바람이 들 팔자였다. 그 얘기를 하자면 ‘술과 친구’가 빠질 수 없다. 내가 가는 술집에 외대 연극반원들이 자주 찾아왔고 그속에는 대학 동기인 김태균 감독(영화 ‘박봉곤 가출사건’‘키스할까요’‘화산고’를 제작했음)이 끼어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애주가였던 나는 이들과 어울려 술에 취하고 연극 영화 얘기에 다시 취했다. 결국 86년부터 김 감독 영화에 돈을 댔고 돈을 까먹기 시작했다. 영화가 뭔지.

그것도 모자라 나는 하던 사업을 다 때려치고 91년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장현수 감독) 제작부에 들어가 ‘막내’가 됐다.

아마 그 어려웠던 시절 영화계 동료들과 소주병이 없었다면 쉽게 그 시절을 지나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영화는 사양산업이고, 한국 영화의 미래는 없다던 때였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요즘 뽕밭이 바다가 됐다. 세상 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현재 등록된 영화사가 1000여 개나 된다니 말이다. 대한민국에 언제 이렇게 부모 속을 썩이는 ‘후레자식’들이 많아졌나?

하지만 요즘 후배들을 보면 자기 인생을 걸고 이 길로 찾아오는 이도 있지만 돈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들어오는 부류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충무로가 부모 말도 듣지 않는 불효자식들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비바람에도 자신들의 영화를 만들어온 고집 불통들의 일터인 것이다.

차승재(영화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