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GO)’/가나시로 가즈키(金城一紀) 소설/고단샤(講談社) 2000년
가나시로 가즈키는 올해 서른 한 살의 젊은 재일한국인으로 일본에서 단연 촉망받는 신예 작가다. 지난해 그에게 나오키(直木)상을 안겨 준 작품 ‘고(GO)’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올해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일본에는 10월 중 개봉될 예정이며,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상영될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재일 한국인인 작가의 청춘 시절을 되돌아 본 일종의 자전소설이다. 재일한국인 고등학생인 주인공은 민족의 정체성 문제라든가 일본 사회의 민족 차별의 벽에 부딪힌다. 그러나 한 일본인 여성(이 여성도 고등학생이다)과의 연애를 통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모색해 가는 내용이다.
이런 줄거리로만 본다면 이 소설은 종래의 재일(在日) 문학의 틀을 그대로 답습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특히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있는 재일한국인 주인공과 일본인 연인 사이의 민족과 국적에 관한 갈등 등은 사실 진부한 것이다.
이런 앙상한 줄거리로만 정리, 요약해 버린다면 이 작품의 진가는 반감되어 버린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재일문학에는 번뇌, 방황, 절망하는 인물들이 주로 등장했다. 그래서 그 작품들에는, ‘언제나’라도 단정해도 좋을 만큼 침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인상이 전혀 다르다. 이 작품이 무엇보다도 신선한 것은,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을, 젊은이들 자신의 시점에서, 속도감과 상쾌함에 넘치는 문체로 표현했다는 데에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그것은 음악이나 미술인 경우도 있고, 하찮은 치기인 경우도 있다. 주인공은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는 전차와 경주를 하면서, 뒤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선로 위를 달리는 위험한 장난에 몰두한다. 거기에는 진지함과 치기가 섞여 있어서, 어쩌면 그것은 아무 목적도 없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여기에서 끝나고 말았다면, 흔히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의 사회에 대한 반항을 그린, ‘청춘 소설’의 진부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 작품에서는, 예를 들면 제임스 딘이 주연한 ‘이유없는 반항’에서 풍기는 허무감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반항만 한다면, 그것은 결국 반항 대상에 대한 리액션, 즉 반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한 리액션이 아니라, 미지의 영역을 갈구하는 액션이어야 중요한 것이다. 작가가 외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소설의 제목인 ‘고’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민족이든 국가든 어디로 되돌아 가는 것도, 잃어 버린 과거를 되찾는 것도 아니다. 어디로 ‘가는’ 것, 미래에로 내딛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을 힘있게 시사하는 작품이다.
이연숙(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