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중앙정보부(이하 중정)에서 조사를 받다가 의문사한 고 최종길(崔鍾吉·사망 당시 42세) 전 서울대 법대 교수의 시체 현장사진 2장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또 중정이 최교수를 간첩으로 발표할 때까지 사실의 은폐와 조작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따라 박정희(朴正熙) 유신체제의 ‘의문사 1호’로 지목돼온 최교수 사망사건의 진상 규명 작업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체 현장사진〓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梁承圭)는 18일 최교수의 시체 현장사진이 당시 작성된 부검 감정서 및 부검사진들과 많은 차이가 있다며 중정이 최교수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투신현장 자체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부검 감정서에는 최교수의 머리 부분에 파열창이 없는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이 현장사진에서는 시체의 머리에 직경 60㎝ 가량의 혈흔이 확인된다. 파열창이 없이는 이 정도의 혈흔이 나타나기 어렵다는것.
위원회는 “사진상의 혈흔에 강력한 의구심을 갖고 확인작업중”이라며 “시체의 자세도 추락한 것것으로 보기엔 부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또 중정의 발표대로 최교수가 중정 건물 7층에서 뛰어내려 숨졌다면 최교수의 귀 코 입 등으로 다량의 피가 분출돼 혈흔이 방사상으로 퍼져 있어야 하지만 사진에서는 피가 직선으로 흐른 것으로 나타난 점도 의문이라고 위원회는 밝혔다.
위원회는 현장검증 시간도 조작됐다고 발표했다. 당시 중정의 현장검증 문서에는 현장검증이 10월19일 오전 4시반에서 5시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돼있으나 당시 중정 기록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이 시간에 현장 검증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
위원회는 당시 다른장소에서 숨진 최교수를 옮겨 사진촬영을 했을 개연성이 큰것으로 보고있다.
이에 따라 최교수 죽음의 실체는 ‘유신체제에 항거해 서울대생들의 첫 데모가 일어나자 박정권이 국면 전환을 위해 최교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유족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조사 경과〓위원회는 또 최교수 사건을 은폐 조작한 중정의 당시 책임자와 지휘라인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확보했으며 최고 책임자가 누구인지 특정하기 위한 작업에도 상당한 진척이 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최교수가 중정의 수사 과정에서 매우 심한 고문을 당했으며 당시 직접 고문을 한 수사관이 누구인지도 사실상 확인됐다”고 밝혔다. 위원회 관계자는 “수사관들이 심한 폭언과 함께 손과 발 몽둥이 등으로 최교수를 구타했으며 일명 ‘통닭구이 고문’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그러나 이 관계자는 고문이 최교수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최교수는 73년 10월16일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 참고인으로 당시 중정 감찰실 직원이던 동생 종선(鍾善·54·미국 거주)씨와 함께 서울 남산에 있던 중정에 자진출두했다가 사흘만인 19일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중정은 최교수가 간첩이라고 시인한 후 자책감을 못이겨 조사받던 7층 화장실에서 투신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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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길교수 28주기 추모제▼
고 최종길(崔鍾吉·당시 42세) 전 서울대 교수의 28주기 추모제가 18일 오후 5시 서울대 근대법학교육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梁承圭)가 8월 “최 교수가 간첩 혐의사실을 자백한 적이 없었고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발표한 이후 처음 열린 것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숙연했다.
김학준(金學俊) 동아일보사 사장은 추모사에서 중학 시절 사제의 인연을 맺은 일을 회상하며 “평소 신체의 자유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서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세상을 뜨신 것은 유신체제가 낳은 역설”이라며 “이런 비극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명확한 사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진상 규명 및 명예회복추진위원회’는 20일 오후 1시반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내 민주열사 묘역에서 고인의 추모예배를 올릴 예정이다. 02-3672-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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