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세대 중에는 ‘흑백 영화’라면 무조건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인데도?
그래도 솔깃해지지 않는다면 할 수 없다. 그런 이들에게 ‘귀신이 온다(鬼子來了)’는 쉽게 권할 수 없는 영화다. 2시간 34분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영 시간중 2시간 33분 동안 흑백 화면을 봐야할 테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을 사실감 넘치게 그려낸 흑백 화면의 묘미와 함께 컬러로 바뀐 마지막 1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귀신이 온다’는 영화배우 겸 감독인 지앙웬이 두 번째로 연출한 작품이다. 그는 감독 데뷔작인 ‘햇빛 쏟아지는 날들’이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귀신이 온다’가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장이머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았던 지앙웬은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인 순박한 농부 ‘마다산’역을 연기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정월 닷새전. 중국 북부의 한 시골 마을의 농부인 마다산의 집에 정체모를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이들은 마다산에게 자루 두 개를 며칠간 맡기며 “일본군에게 신고하면 마을 사람 모두를 죽이겠다”고 협박한 뒤 사라진다.
자루에는 각각 일본 병사와 그의 통역을 맡은 중국인이 결박돼 들어 있다. 마단산은 동네 사람들과 의논한 끝에 일단 이들을 돌보기로 한다. 하지만 며칠 내에 오겠다던 이들은 반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순박한 마다산은 이들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귀한 밀가루까지 구해가며 두 사람을 돌본다.
천황이 항복을 선언한 8월15일,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을 일본군에게 넘겨 주고 곡식을 댓가로 받기로 한다. 그러나 이미 패전 소식을 알고 있는 일본군은 마을에서 잔치를 벌이는 척 하다가 마을 사람을 전부 죽인다.
역사의 격변기에서 평범한 개인의 삶이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과정을 코믹하고 가볍게 그려냈다. ‘귀신’은 개인의 내면 속에 ‘선(善)’과 함께 혼재돼 있는 ‘악(惡)’을 뜻한다. 27일 개봉. 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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