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9월초만 되면 강원 평창군 봉평면에는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흐드러진 메밀꽃을 보려고 20여만명이 모여듭니다. 볼만한 것이라고는 메밀꽃과 이효석 문학비, 물레방아가 고작이지만 관광객들은 기념사진을 찍느라 부산합니다.
왜 관광객들이 굳이 이곳을 찾아와 문학적 정감에 빠지는 것일까요. 가산 이효석(1907∼1942)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무대여서? 그렇다면 염상섭이나 이상의 생가터나 문학비는 왜 한산한 것인가. '삼대'나 '날개'의 작품성이 못해서?
최근 출간된 박헌호 교수(고려대 BK21 한국학 교육연구단)의 평론집 < 한국인의 애독작품 >(책세상문고47)은 일반독자들이 < 메밀꽃 필 무렵 >이나 < 소나기 >(황순원) < 동백꽃 >(김유정) < 사랑손님과 어머니 >(주요섭) 등의 소설을 선호하는 이유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어 관심을 끕니다.
이런 일군의 소설들은 세계와 대상에 대한 치열한 물음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이랄지 모더니즘이나 자유주의 계열, 지적이고 관념적인 소설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 감춰진 삶을 진실을 탐구하고, 운명이나 한과 같은 전통적인 정서에 부흥하며, 서정성을 유발하는 다양한 장치를 통해 수준 높은 예술미를 보여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는 것이죠.
박 교수는 이 같은 한국인의 애독작품의 공통분모를 '향토적 서정소설'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 감춰진 삶의 진실을 탐구하고 △운명이나 한과 같은 전통적인 정서에 부응하며 △서정성을 유발하는 다양한 장치로 수준 높은 예술미를 보여주는 작품을 뜻합니다.
박 교수는 단순화의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향토적 서정소설의 탄생 배경과 줄기찬 생명력을 한국 근대사의 독특한 경험으로 설명한다. 즉 서구적 근대화가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것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전통적 정서에서 위안을 얻었다는 점, 특히 해방 이후 학교 교육에서 이런 탈이데올로기적 소설을 대거 수용함으로써 대중의 '공통된 미적 경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의 소설들이 대중에게 친근한 소설로 자리잡은 것은 분단 이후의 이데올로기적 상황과 문학교육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1988년까지 납북 및 월북작가와 작품이 거론되지 않음으로 인해 이들 소설이 조명받을 수 있었던 사정, 쉽게 바뀌지 않는 교과과정과 문학 교육을 통해 이들 소설의 '공통된 미적 경험'이 오랫동안 훈련될 수 있었던 것, 학술적인 측면에서 '식민지 시대 문학의 전통 지향성'이라는 주제가 풍부한 성과를 얻어 이러한 경향을 뒷받침한 사정들이 그 구체적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박 교수는 ‘향토적 서정소설’이 언제 어떻게 발원되어 꽃을 피우게 됐는지 역사적으로 접근합니다. 먼저 제1장에서 < 메밀꽃 필 무렵 >, < 사랑손님과 어머니 >를 차분하게 분석하며 이들 소설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향토성'과 '서정성'이라는 특성을 추출한다. 이 때의 '향토성'은 단지 공간적인 의미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근대화에 대한 거리감이라는 의미에서 전통성과 연관되는 것이고, '서정성'은 이들 작품이 지향하는 심미적 실체를 요약하는 것이라 판단한다. 이 같은 분석을 통해 저자는 “향토적 서정소설이 근대적 현실에 대한 '산문적 대결'은 못했으나, 자기가 속한 장르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자신의 독특한 미적 성취를 이루어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어서 2장에서는 이런 특성이 어떠한 역사적 배경 속에 이뤄졌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가를 논의한다. 저자는 향토적 서정소설의 형성 배경을 식민지 반봉건성과 관련된 거시적인 시각에서 파악하며, 3장에서는 “향토성의 근원이 타율적 근대화로 인한 피로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독특한 시각을 전개핸다.
4장에서는 근대의 상징인 이성이 보여준 딜레마와 우리의 식민지 현실에서 왜곡된 욕망의 문제를 조명합니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 B사감과 러브레터 >를 검토함으로써, 근대적 이성의 그늘 아래에서 뒤틀린 우리식 욕망의 존재 방식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는 김동인에 의해 '조선문학의 윤곽'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되었는데, 저자는 이를 '한국인의 심미적 경향'이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또한 '조선문학의 윤곽'이 팔자타령이나 한과 같은, 우리 민족의 열등성을 강조했던 식민사관의 산물로 비판 받을 수도 있으나, “생에 대한 한국인의 생래적 감각”으로 볼 수 있다고 언급합니다.
이런 논점은 5장에서 김동리의 < 황토기 >를 통해 심도있게 서술됩니다. 저자는 < 황토기 >는 “자연과 전설 그리고 운명의 불가역성이 어우러지는 삼중주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각별한 작품이지만 근대적 현실과의 대결을 무력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고 평가합니다. 이로써 근대적 현실에 근대적 방식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우리 문학의 일면을 보여주지만, 대신 6장에서는 한국 근대소설의 빈곤했던 형식적 수준의 한 차원 끌어올린 이태준의 '묘사'를 통해서 풍경 묘사와 단편을 중심으로 발전한 향토적 서정소설의 가능성을 점검하면서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박 교수는 향토적 서정소설이 한국문학사에 남긴 업적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어느 정도 비판적 거리감을 유지하는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려 합니다. 즉, “향토적 서정소설이 전통적 정서를 복원해내며 한국 근대소설의 미학을 격상시킨 공로에도 불구하고 현실과의 대결이라는 소설적 정의에 충실하지 못한 점은 분명 한계로 남을 것”이란 점이죠.
박 교수는 "향토적 대중소설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문학적 감수성의 골간을 차지한다"고 주장합니다. 해방 후에는 1940년대 후반 김동리의 < 황토기 >, 1950년대 오영수의 < 갯마을 >, 1970년대 이문구의 < 관촌수필 > 등으로 이런 경향이 면면이 대물림되어졌다는 이야기죠.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정밀한 연구와 토론이 있어야겠지요.
일반 독자들의 문학 선호 경향을 '향토적 서정성'으로 파악하는 것은 일견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서 이청준의 다양한 지적 소설을 제쳐두고 < 선학동 나그네 >(영화 '서편제'의 저본)가 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황석영의 < 삼포 가는 길 >이 왜 대중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지 등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1990년대 작가인 신경숙(< 풍금이 있던 자리 >)과 김소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의 작품이 널리 읽혔던 이유도 이런 경향의 현대적 변용으로 파악되는 것이죠.
박 교수는 "지금 우리 소설은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특정 소설가의 작품도 한 가지 경향으로 획일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지금까지 많은 작가들이 향토적 소재와 서정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음은 분명하다"면서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 윤정훈의 글동네 이야기 > 중 ’밑줄긋기’ 페이지에는 < 한국인의 애독작품 >에 실린 박 교수의 ‘머리말’과 ‘들어가는 말’이 실려있습니다. 저자의 논지를 파악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이므로 일독을 권합니다. ☞ 바로 가기
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