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문제의 본말 뒤집는 처사▼
국회의원 면책특권은 왕권이나 독재권력으로부터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의 발언을 보호하기 위하여 300여년 전 영국 의회가 윌리엄 3세에게 헌정한 권리장전에서 의회 내 토론의 자유를 보장한 이래 현재 세계 각국의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다.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분립 원리 위에서 국회가 정부에 대해 갖는 통제장치로, 즉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장치의 일종으로서 헌법이 부여한 특권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정당행위로 인정되는 한 혹시 다른 사람의 인격가치를 침해하고 명예를 훼손했다 하더라도 이 특권 때문에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다만 국회법 제146조에 의해 다른 사람을 모욕하거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국회법 제155조에 따라 국회의 의결로써 국회 내에서 징계할 수 있을 뿐이다.
과거 국회의원 면책특권에 대한 법적 해석에 대해 공청회가 열리기도 하고 면책특권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논란도 여러 차례 있었다. 검찰도 면책특권의 법리문제로 고민한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요구에 밀려 수사에 착수했으나 명예훼손혐의로 피소된 국회의원에 대해 면책특권을 인정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던 예가 있다.
대법원 판례는 1992년 “국회에서 발언할 원고를 미리 기자들에게 배포한 행위는 면책특권 대상이 된다”고 판시한 유일한 판례가 있을 뿐이다. 이 판례로 미루어보아 법원의 태도는 면책특권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판결문에 “국회에서 행한 직무상 발언과 표결 자체뿐만 아니라 이에 부수해 일체 불가분적으로 행해진 부수 행위까지 포함된다”고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물론 모든 권리와 권한의 행사에는 내재적 한계가 있다. 구태여 독일기본법처럼 면책특권규정에 단서를 두지 않더라도 국회의원은 모름지기 국민의 대표자로서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해야 하고 그 지위나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야당의 한탕주의식 폭로,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성 발언과 같은 무책임한 정치공세나 인격권 침해를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로 여당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회의원 면책특권의 제한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그 발상 계기로 보나 적절치 못하다. 국회의원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나 수준 낮은 행태가 어제오늘만의 일도 아니요 특정 정당만의 문제도 아니다. 갑작스레 면책특권을 제한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처사일 뿐만 아니라 정치공세에 대한 바르고 떳떳한 대응방법이 아니며 나아가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여권의 그런 태도는 얕고 약삭빠른 법 기술적 전략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 더욱이 정치적 중립성이 가장 요구되는 검찰총장이 국회의원 면책특권의 내재적 한계에 대해 언급한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국회내에서 책임-제재 논의를▼
최근에 또다시 재연된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논란은 문제의 본말을 전도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정치권에 기만과 술수, 부정과 부패의 한심한 작태가 만연하고 있는 한, 과거 독재정권 때도 유지되어 오던 면책특권마저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정치권의 또 하나의 기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사안은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국회 내에서 특정의원의 발언내용이나 수준 등은 국회법에 의해 국회 내에서 책임과 제재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의 저울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교묘하고도 세련된 정치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principle of checks and balances)는 국민주권주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이 원리를 저해하는 어떤 다른 정치적 기술이나 법 제도를 고안한다 해도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며 오히려 거센 저항을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영란(숙명여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