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한국)에서 살며 일한다는 것은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한 일의 연속이다. 예의범절에 관한 수많은 덫과 그로 인한 수많은 실수와 오해들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래도 나는 한국에 대해 점차 흥미 이상의 것을 느끼고 있다.
나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한국을 여행 삼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사는 스위스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동양의 조그마한 나라 한국을 여행하게 된 배경에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한국인인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처음 본 남자의 배려에 감동▼
내가 한국에 처음 여행을 온 것은 1994년 2월, 매섭게 춥고 구름 낀 어느 날이었다. 나는 원주를 구경시켜주고 싶다는 친구를 기다리며 원주의 한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워낙 추운 날씨라 그 곳에서 30분 정도 서서 기다리다보니 내 발은 감각이 없어져 버렸다. 온 몸이 얼음덩이가 되기 직전 한 나이든 남자가 나에게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한국말을 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의 말을 끊어보려 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가 나를 길 밖으로 끌어내기 전,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단어는 ‘커피숍’이었다. 마침내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한 커피숍으로 들어갔고, 그 곳의 웨이트리스는 나에게 이 남자가 추운 곳에 서 있는 나를 염려해 이 곳으로 데려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아! 그때의 놀라움이란. 조그마한 지방도시에서 맞닥뜨린 그때의 감동은 “이 곳에는 내가 탐험하고 싶어하는 일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 후 한국에 정착한 뒤 나의 모험은 많은 부분 지하철에서 시작됐다. 지하철은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번은 역을 지나치기 직전 매우 아슬아슬하게 지하철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채 쉬기도 전에 전동차 선반 위에 그대로 놓고 내린 노트북 컴퓨터가 생각났다. 그 안에는 나의 모든 고객의 이름과 기업의 데이터베이스는 물론 심지어 다음날 당장 제출해야 할 각종 보고서까지 자료가 빼곡히 들어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러나 분실물 보관센터에서도 노트북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누군가 가져갔겠지, 찾을 수 없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런 고가품의 경우 내가 사는 스위스에서도 다시 찾기는 거의(100%) 불가능한 법이니까 하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리고 며칠이 흐른 후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혹시 노트북 분실하지 않았나요?” 그녀는 나의 노트북을 보관하고 있다며 퀵서비스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고마운 은인을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한사코 사양했고, 그 날 오후 나는 퀵서비스로 노트북을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그녀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던 터라 나는 비서를 시켜 조그마한 선물과 함께 나의 벅찬 감동을 적어보냈다.
내가 살아왔던 유럽과 다른 이런 인간적인 모습에서 “한국은 따뜻한 나라구나. ‘정’이라는 말을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들었는데 살면서 자연히 알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좋은 경험 덕분 한국에 마음뺏겨▼
한국에서 생활한 지 4년이 된 지금, 나는 한국과 한국인들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아직도 거의 매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새로운 일들을 겪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좋은 경험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중 몇몇의 좋은 경험이 나의 마음을 한국에 머물러 있게 하고, 또 영원히 머물게 하는 힘임에 틀림없다.
약력:에릭 할터는 스위스인으로 취리히의 마케팅 매니지먼트 스쿨을 졸업했고, 취리히 HWV대학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비즈니스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할터씨는 그동안 스위스 마케팅 회사인 NCR의 Key Account Manager를 거쳐 현재 전 세계적으로 11개 해외지사를 두고 있는 유럽의 마케팅 회사 ‘쇼버’사의 수석 컨설턴트 겸 한국 다이렉트 마케팅인 ‘NDM다이얼로그 마케팅’(www.ndm.co.kr)사 최고경영자(CEO)로 있다.
에릭 할터(NDM다이얼로그마케팅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