賞 楓(상풍)
賞-감상할 상 楓-단풍나무 풍 錦-비단 금 繡-수 놓을 수肥-살찔 비 雁-기러기 안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이 구별되는 데다 철마다 피는 꽃이 각기 따로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 하여 ‘삼천리 錦繡江山(금수강산)’이라고 했다. 그 중 天高馬肥(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에 피는 대표적인 꽃은 菊花(국화)다. 그래서 菊花는 가을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을에는 꽃 아닌 꽃으로 화려함을 더한다. 바로 丹楓(단풍)인 것이다. 벌판의 누런 황금색과 한데 어우러져 원색의 壯觀(장관)을 연출한다. 가을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나무는 잎의 색깔을 바꾼다. 엽록소를 생산하던 것을 중지하고 대신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를 잎 안에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뭇잎은 붉은 색을 띠게 되는데 丹楓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바로 이 붉은 색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붉은 색뿐만 아니라 노란색과 주황색을 띠는 나뭇잎도 있다. 노란색의 경우, 은행이 대표적이며 주황색을 띠는 것으로는 참나무, 너도밤나무 등이 있다. 하지만 붉은 색이 주류를 이루고 또 강렬한 인상을 주므로 가을 산을 물들이는 대표적인 색깔은 역시 붉은 색이 아닐까. 우리네 옛 조상들이 가을을 두고 ‘征雁紅葉(정안홍엽·기러기 날고 단풍이 붉게 물듦)의 계절’이라고 부른 것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난 봄에는 진달래가 붉은 색을 연출하더니 늦가을이 되자 이제 丹楓으로 온 산이 불붙는다. 이쯤 되면 제 아무리 들어앉은 샌님일지라도 감흥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저기 저 하늘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未堂 徐廷柱(미당 서정주·1915∼2000)님의 ‘푸르른 날’ 의 일부다. 붉은 단풍은 또한 一片丹心(일편단심)을 상징하기도 하여 옛 선인들이 즐겨 시로 노래했다.
봄을 감상하기 위해 봄나들이하는 것을 賞春(상춘)이라 하듯 丹楓을 감상하는 것을 賞楓이라 한다. 지금 전국의 名山에 가을의 마술사 단풍이 한창이다.
이와 함께 단풍을 구경하고자 하는 賞楓客(상풍객)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설악산에 이어 오대산 소백산 등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든 賞楓客 때문에 제때 下山하지 못한 구경꾼들이 밤에 下山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소식이다. 그러다 無秩序(무질서)도 없지 않았던 모양이다. 단풍은 아름답되 이를 찾는 賞楓客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