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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지리산 뱀사골 단풍/설움 사무친 '붉은 울음'

입력 | 2001-10-24 18:45:00

뱀사골 '황금연못'


낙엽 한 잎에 세월도 한 뼘.

단풍 물오른 만큼 겨울 가까이 다가 오니 지리산 뱀사골(전북 남원시 산내면) 다람쥐 손발 바쁜 것은 어쩔 도리 없다.

늦 단풍잎 비 되어 내리는 뱀사골. 농익어 넘칠 듯 넉넉한 만추의 서정이 물 나무 돌 풀에서 배어 나온다. 그런 절세의 추색에 한 몫 거드는 것은 나비 겨드랑이 솜털처럼 보드라운 가을바람. 단아한 단풍빛깔 만큼 물 흐름 차분한 계곡을 훠이훠이 휘젓는다. 그 바람에 노랑 빨강 단풍잎은 간드러진 춤사위로 공중을 수놓고.

국립공원 매표소 지나 당도한 반선(半仙)의 식당가. 뱀사골 단풍곡 열리는 곳이다. 계곡 내려다 보며 요룡대까지 오르는 2.2㎞ 산길. 이따금 차가 지나더라도 짜증 내지는 마시라. 요룡대의 와운교 건너 1.8㎞쯤 떨어진 와운(臥雲)마을 주민들 ‘발’이니까. 한가할 적에는 히치하이킹도 가능하니 어디 한 번….

본격적인 단풍 트레킹은 와운교부터다. 최상단의 대피소까지는 6.8㎞. 기암괴석을 타고 내리는 계곡의 맑은 물소리 들으며, 온 산을 붉게 물들인 단풍치마 쳐다 보며, 붉고 노란 단풍잎 고이 앉은 숲그늘 돌길 걸으며, 사박사박 낙엽이 바위에 내려 앉는 소리 음미하며걷는 운치 만점의 단풍길은 계곡 가장자리로 이어진다. 아쉽다면 계곡자연휴식년제(내년 연말까지)로 물가에 내려갈 수 없는 것.

다리 건너 계곡 가로지르길 몇 차례. 멋진 작명이 눈길을 끄는 골안 비경도 수시로 나타난다. 큰 뱀이 목욕 후 허물벗어 용이된 채 승천하는 모습 같다는 ‘탁용소(濯龍沼)’, 바위 틈 물길이 병을 닮았다는 ‘병소(甁沼)’, 소원 들어두던 고승의 영험이 여태 이어진다는 ‘재승대(再承臺)’ 등등. 그러나 미명(美名)에 연연해 주변 풍광을 간과하는 우는 범하지는 말기를. 내 마음에 와닿는 그 곳이 작명 화려한 어떤 곳 보다도 더 멋진 곳이니.

가을 뱀사골 단풍숲에는 늦둥이도 많다. 낙엽비 사이로 분주히 퍼득이는 솜털 무성한 가을나비, 아직도 새잎 내는 끈질긴 가을풀의 연록잎 위에서 세월도 잊은 채 정신 못차리고 노래부르는 베짱이. 해 든다 해도 네댓시간이 고작인 뱀사골의 가을 짧은 해를 아는지 모르는지….

산그늘 짙게 드리워 계곡 반이 그림자에 묻힌 병소. ‘황금연못’은 거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달밤 경포호를 ‘월주’(月柱·밤하늘의 달이 수면에 길게 늘어져 비친 모습을 ‘달기둥’이라묘사한 표현)가 친다면 뱀사골 가을 오후에는 단연 ‘황금연못’이 계곡을 빛낸다. 단풍든 붉은 산경이 계곡 탕의 수면에 빠져 황금빛으로 물든 모습. 그게 황금연못이다. 그 옆 못에서 열심히 자맥질하는 물총새. 쉴새없이 잠수하며 물 속을 훑는다.

반선으로 하산길. 와운교에서 오른편 길(콘크리트 포장도)로 접어드니 와운마을이다(1.8㎞). 딱 열 가구가 민박 토봉치며 사는 산골. ‘구름도 누웠다 갈(臥雲)’ 만큼 아늑한 마을 안팎은 온통 감나무와 벌통 천지다.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지리산 가을기운이 몽땅 여기 모인 듯 풍요롭다. 마을든 옴팍한 골짜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 500년간 마을을 지켜온 거대한 동신목(洞神木) ‘와운 천년송’이 거기에 있다. 넉넉 당당한 품새가 꼭 지리산을 빼어 닮았다.

▼"백양산 애기단풍 보러오세요"▼

‘애기단풍’으로 이름난 전남 장성의 ‘백양사 단풍축제’가 26∼28일 백암산과 백양사 일대에서 열린다.

애기단풍이란 단풍잎이 어른 엄지손톱∼어린이 손바닥 크기(너비 3.2∼6.5㎝)로 작아 붙여진 이름으로 선명한 색상이 특징. 백양산 단풍산행은 4시간 소요. 단감 사과 등 특산물 판매전, 향토음식 먹을거리 장터도 열린다.

호남고속도로/백양사IC∼장성호∼약수리(좌회전)∼백양사. 장성∼백양사는 버스로 30분 거리. 내장산 등산열차(28일 서울역 출발), 내장산 단풍열차(11월 3∼8일)도 운행. 장성군청 061-390-7221

▼식후경/뱀사골 전주식당▼

겨울산 기지개 켜면 고로쇠 물따고, 봄가지에 물오르면 산나물 캐고, 여름 늦더위 물러갈쯤에는 머루 다래따고 가을 깊어가면 송이따고 눈내리기 전까지는 약초캐고. 산중 생활 단조로울 것 같아도 살다보면 때맞춰 이것 저것 이고 지고 산자락을 오르 내릴 일이 산더미 만해 그 분주함이 도시사람에 절대로 뒤지지 않다는데….

“달포 전에는 머루 따다가 굴러 기어코 갈비 한 대를 부러뜨리고야 말았지요.”

네살 때 러시아에서 돌아온 아버지 손에 끌려 뱀사골에 온 뒤 여지껏 반선을 떠나지 않고 산사람이 되어 버린 뱀사골 입구 반선(半仙)식당가의 ‘전주식당’ 주인 황홍연씨(49). 그가 소주잔에 담아 건네 주는 진한 머루진액 한 잔에는 그런 노고가 담겨 있었다.

식당안 한쪽 벽의 장식장을 가득 메운 것은 산중의 먹을거리들. 오미자 복분자 당귀 영지는 물론 반야봉 일대 적령치에서 캔 마가목으로 담근 술과 차, 삐죽삐죽 가시 돋친 가시오가피로 담근 술, 밀랍통에 담긴 토종꿀 등 온갖 ‘산중 보석’이 즐비하다.

그 중 진보랏빛 머루진액(사진)은 후식으로 그만이다. 설탕에 재워 40일쯤 두면 자연발효돼 알코올 2%의 진액이 고이는데 그 맛을 보면 새콤 달콤 첫맛 뒤에 ‘알딸딸’한 취기가 뒤따라 피로회복에 ‘왔다’다. 1.6ℓ들이 한 병에 5만원. 063-626-3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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