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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시즌]'믿음의 야구' 활짝 피운 김인식감독

입력 | 2001-10-26 18:08:00

두산 김인식감독


“그래도 쟤는 선발이야.”

96년 9월. 신인투수 박명환이 7월부터 9월초까지 두 달간 선발로 나가 1승도 거두지 못하고 9연패에 빠지자 주위에선 “되지도 않는 투수를 너무 밀어주는 것 아니냐”며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된다’고 판단한 선수는 끝까지 믿음을 갖고 밀어준다는 게 두산 김인식 감독(54)의 스타일.

김 감독은 “몇연패를 하든간에 박명환은 선발로 쓴다”고 간단히 잘라 말했다. 박명환은 9연패 뒤 9월 8일 인천 현대전에서 완봉승으로 김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고 이듬해인 97년에 8승, 98년엔 14승을 거두며 팀의 기둥투수로 성장했다.

“난 너 못 보내. 구단에 가서 말해.”

99년 8월. 포수 진갑용이 감독실을 찾았다. “감독님, 저 좀 살게 해주이소.” 그 말의 의미는 누구보다 김인식 감독이 잘 알고 있었다.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해 달라는 얘기. 진갑용은 97년 OB(현 두산)에 입단한 뒤 코칭스태프의 배려로 2년간 주전자리를 꿰찼으나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이유는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때문. 부산연고인 진갑용은 롯데가 손민한을 1차지명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OB 유니폼을 입어 입단 첫해부터 마음이 떠나 있었다. 진갑용이 감독에게 “살려달라”는 말을 한지 두시간.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던 김 감독은 자기 손으론 절대 아끼는 제자를 “못 보낸다”고 했다. 다음날 구단에 들어간 진갑용은 ‘반협박’과 ‘애원’을 해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이밖에도 김인식 감독을 둘러싼 일화는 수 없이 많다. 그 일화의 대부분은 선수와의 믿음에 관계된 얘기다. 의리파인 그는 타고난 ‘보스 기질’이 있다. 사람을 아끼다 보니 자연히 따르는 사람이 많다. 그와 한번 인연을 맺은 선수들은 모두 ‘평생의 사부’로 모신다. 김기태 김정수 이정훈 등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모두 “김 감독님 밑에서 야구 한번 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포수 홍성흔은 한번 분위기를 타면 활활 타오르는 팀컬러에 대해 “코칭스태프와 선수, 팬이 오랫동안 한마음으로 뭉쳐 이뤄낸 결과인 것 같다”고 말한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초대감독을 지내고 95년 OB로 자리를 옮긴 뒤 7년째 사령탑을 맡고 있는 그는 현역 가운데 가장 오래 한 팀을 맡고 있는 감독이다. 선수들 걸음걸이만 봐도 몸 상태가 어떤 지 알 정도로 선수단을 잘 파악하고 있다. 선수들 역시 김 감독이 뭘 원하는지 잘 안다. 믿는 만큼 보답하는 게 두산야구다. 끈기의 곰처럼 참을 줄 알고 끝까지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뚝심의 야구’.

이것이 바로 2001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막강 삼성을 맞아 예상을 깨고 3승1패의 우위를 점하며 27일 5차전 등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추가하면 대망의 한국시리즈 정상에 서게 되는 두산의 힘이다.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