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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읽는 책]한젬마 '철학의 세계'

입력 | 2001-10-26 18:14:00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지 않던가. 생각하기에 존재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저 먹고 자고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하루살이 인생이 아니라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거듭 돌이키면서 살아야하는 삶 아닌가.

예중, 예고와 미술대학을 거쳐 대학원까지 무난하게 미술가의 정도를 걷던 내가 세상을 홀로 짊어지어야 하는 벌을 받은 양 ‘생각하는 짐승’이 됐던 1994년을 잊을 수 없다.

“젬마야 넌 왜 미술 작업을 하니? 궁극적으로 네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뭔데?” 라는 질문과의 충돌.

아니. 내가 그럼 생각없이 살았다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받다니…. 매우 불쾌하고 용납하기 힘들었지만 이내 무지의 문이 열리며 비집고 들어오는 새로운 인식의 빛을 막을 수는 없었다. 거부하기에 너무나 강렬했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고통스러운 무게였다.

“그래, 내가 왜 그림을 그리지? 그림만이 내 인생의 전부인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상과 삶의 목적에 대한 갈증을 더해가며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종착한 곳이 바로 철학이었다. 대형서점의 철학코너에서 이것저것을 비교하고도 내가 선택한 책이 바로 ‘철학의 세계’(강성률 지음·한울·1994).

이 책은 철학을 크게 서양과 동양으로 구분하고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흘러간다. 서양철학은 고대철학, 기독교를 중심으로한 중세철학, 합리주의 경험주의 계몽주의 칸트 독일관념론을 총괄하는 근세 철학, 마르크스 쇼펜하우어 프로이트 니체 등의 거장의 철학세계를 간파하는 현대철학을 포함했다. 동양철학은 중국과 인도의 지역적 구분으로 읽어내어 그야말로 철학의 세계를 총망라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얻은 큰 수확을 꼽는다면 종교가 아닌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접하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젬마’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천주교라는 굴레에서 가지고 있었던 내가 타종교에 대한 편견을 벗고 진정한 종교의 의미에 접근하는 기회를 주었다. 비록 각 철학자나 학파들에 대해 깊이 있는 접근에는 못미치지만 인생을 알고자 하는 목마른 문외한에게 단숨에 여러 사유를 맛보게 해주는 철학뷔페 상차림과 같은 책,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닌 인생과 예술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마련해준 책이다.

오랜만에 색바랜 추억의 책장을 다시 넘겨본다. 드로잉북을 방불케할 정도로 곳곳에 줄친 문장을 쓰다듬고 구석구석 남긴 독백의 흔적을 더듬으며 당시 간절하고 의욕적이었던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해본다.

한젬마(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