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33)이 다음달 9일 개봉하는 ‘달마야 놀자’로 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다. 23일 오후 약속 장소인 서울 삼청동 인근 ‘갤러리 현대’에 나타난 그는 잠시 미술관을 어슬렁거리다 기자와 마주쳤다.
박신양이 ‘달마야…’에서 건달로 나오는 터라 아무래도 예술 작품이 배경으로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밖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런데 박신양은 피식거리며 “그런 건 상관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건?
‘박신양은 자기 주장이 강해 가끔 주위 사람과 부딪친다’는 영화계 일각의 말이 떠올랐다. 미술관 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까요?
“배우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마케팅하기 위해 어디까지 홍보에 나서야 하는지를 두고 갈등이 컸어요. 배우는 자신을 숨기고 영화라는 상품만을 홍보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가요?
“팬들은 영화 뿐만아니라 나 개인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니까. 그러다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습니다.”
박신양은 처음부터 왼손으로 눈썹을 쓰다듬으며 정색하고 나섰다. 영화 얘기부터 나누는 게 ‘생산적’이겠다고 생각했다. ‘달마야…’는 다른 패거리에 쫓기다 절에 몸을 숨긴 조폭 일당과 그들을 내쫓으려는 스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렸다.
-어떤 영화입니까?
“버티기와 밀어내기. 들어가려는 깡패와 내쫓으려는 스님, 뭐 그런 얘기를 코미디로 풀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박신양은 데뷔작 ‘유리’(1996년)에서 살인과 섹스 등 파격을 통해 도를 깨치려는 구도승 역을 했는데, 5년 후 ‘달마야…’에서는 깡패로 스님을 만나게 됐다.
-‘유리’에서의 경험이 적잖은 영향을 줬겠네요.
“허, 일간지라서 그런지….”
뜻밖의 질문이라는 듯 머뭇거리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서로 접점을 찾기 힘든 두 계층이 만나 나중에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데 극중 제가 깡패 보스니까 상대편인 스님을 이해하는 듯한 느낌을 줘야 했거든요. 그 대목에서 ‘유리’에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 때부터 대화는 술술 풀려갔다. 깡패가 나오니까 조폭 영화 얘기를 안할 수 없다.
-물론 2년 전 ‘약속’에서도 깡패 역할했지만, ‘또 조폭 영화냐’고들 합니다.
“분명히 말하는데, 이 영화는 조폭 영화가 아닙니다. 아니 조폭 영화라는 게 도대체 뭐죠?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 있어요?”
-조폭 영화가 한국 고유의 갱스터 영화로 발전할 수 있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또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가 나왔다는 거죠.
“아무튼 아닌 것 같아요.”
‘조폭 영화 불가론’을 펴는 박신양의 눈은 끝이 떨리면서 커졌고 광대뼈 부근의 근육도 씰룩거렸다. ‘약속’ 등에서 보여준 ‘건달기’가 묻어 있는 표정 그대로였다. 사실 박신양은 안성기 등과 함께 영화계에서 몸짓과 표정을 통해 메시지 전달이 가능한 몇 안되는 연기자다. 그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1992년에 졸업한 뒤 3년간 러시아의 모스크바 쉐프킨 연극 대학에서 ‘공부’했다.
-연극적 전통이 강한 곳에서 공부한 영향이 컸겠죠?
“교수님이 ‘몸은 악기라서 안쓰면 녹쓴다’고 하셨는데 지금에야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동료 연기자의 연습실을 빌려 발성 연습과 기계 체조 등을 하고 있다.
-‘달마야…’가 잘 될 것 같습니까?
“관객이 얼마들 지 사실 상관 안해요. 그런데 좋은 영화인 건 확신합니다.”
-좋은 영화라뇨?
“보고 나서 기분 좋아지는 영화죠. 보고 나면 오장육부를 비틀어대는 영화는 결코 좋은 영화라고 보지 않아요.”
박신양은 대화 도중 ‘내가 만든 영화’, ‘상업 배우’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아직 감독을 하거나 돈을 투자해 제작한 영화가 없는데도 ‘내가 만들었다’고 한 것이다. 얼핏 거만하게 들리지만 동시에 그는 자신을 ‘상업 배우’로 규정하는 지독한 현실감각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야기를 마친 뒤 박신양은 주말마다 정우성 등과 함께 하는 야구 경기의 매력을 잠시 늘어놓은 뒤 볼 일이 있다며 강남으로 향했다. 1시간 조금 넘은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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