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인 깡패들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 영화쯤 되겠군.
‘장현수’라는 감독 이름과 ‘라이방’이라는 영화 제목, 그리고 최근 ‘조폭 영화’ 붐을 떠올리며 이렇게 확신(?)한 사람도 적지 않겠다.
데뷔작 ‘걸어서 하늘까지’부터 ‘게임의 법칙’ ‘본투킬’ ‘남자의 향기’에 이르기까지 장현수 감독의 이전 작품들은 하나같이 소매치기나 깡패, 또는 전문 킬러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액션 멜로’ 일색이었으니까.
그러나 장감독은 다섯 번째 영화 ‘라이방’에서 이른바 ‘3류 인생’의 소소한 행복과 불행을 코미디로 풀어냈다.
장감독은 가장 답답하고 희망없는 소시민적 삶을 그려내기 위해 한국에서 꼼짝달싹 해 볼 수 없는 30대 후반의 나이와 세명의 택시 기사, 그리고 계절도 택시 기사에게 가장 힘든 한 여름을 택했다. 심지어 이들이 돈을 왕창 벌 수 있는 곳이라고 동경하는 베트남조차 한국보다 ‘업그레이드’ 된 공간이 아니다.
영화는 “인간은 행복이나 불행을 택할 수 없다. 행복이나 불행이 인간을 택할 뿐”이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인 최학락 김해곤 조준형은 변두리의 단골 호프집에 모여 앉아 행복의 ‘간택’을 못받은 인생을 한탄한다.
“우린 평생 운짱만 하는거야. 우린 여기서 못 벗어나”.
세 친구중 가장 근심없어 보이는 인물은 노총각 해곤. 그러나 그가 짝사랑하던 한의원의 옌볜 처녀는 300만원에 팔려 아버지뻘 노인과 결혼한다.
술만 취하면 베트남 참전 용사인 삼촌 얘기로 친구를 ‘고문’하는 학락은 삼촌이 베트남에서 가져왔다는 ‘라이방’ 선글래스만 쓰고 다닌다. 그에게는 젊은 시절 ‘사고’쳐서 낳은 여고생 딸이 있지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딸은 후원자에게 입양되길 원한다.
유일한 대졸자인 준형은 “한국 언론은 믿을 수 없어 CNN만 본다”는 ‘먹물’. 친구들이 밥먹을 때 늘 공기밥 하나만 추가하는 얌체같은 ‘짠돌이’지만 알고보면 대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다.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고단한 인생이지만, 영화는 경쾌하게 전개되는 동시에 주인공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 사람이 내뱉는 ‘농담 따먹기’식 대사는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고, ‘건수’ 올리려 나이트 클럽에 갔다가 되레 ‘꽃뱀’에게 물리는 상황은 폭소를 자아낸다.
회사 간부에게 돈을 떼인 세 친구는 인생의 반전을 위해 돈많은 노파의 집을 털기로 하면서 긴장이 고조된다. 엎치락뒤치락 한바탕 소동을 치른 뒤 이들은 행복이 의외로 가까이 곳에 있음을 깨닫는다.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는 지적도 있지만, ‘라이방’은 낙관적인 정서와 코믹하게 메시지를 전개하는 기법에 힘입어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고양이를 부탁해’ 등 ‘3류 인생’의 일상을 응시한 최근 영화 중 가장 쉽고 대중적이다. 실명으로 주연을 맡은 세 연극 배우들의 연기도 돋보인다.
그러나 스타가 없는 ‘아저씨’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 관람층인 20대에게 얼마나 먹힐 지 궁금하다. 이들은 ‘라이방’이 한때 선글래스와 동의어로 쓰였던 명품 브랜드 ‘레이밴’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단지 ‘라이벌’의 속어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18세 이상.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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