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떨어지는 걸 보면 목이 탁, 꺾여 나가는 것 같다던 사람이 있었다. 나뭇잎의 조락(凋落)에서 상실, 우수, 나아가 사멸을 떠올리는 것은 동서양의 오랜 문학적 전통이다.
젊음을 ‘청춘’이라 부르며 봄에서 유년과 생기를 떠올리듯, 가을의 우수로부터 노년과 쇠퇴를 연상하는 것 역시 고금과 동서가 다르지 않다.
‘가을. 보잘 것 없는 우리의 과수원,
노란 잎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떨어져 땅에 흩어진다….’ (A.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소품 ‘10월’은 이와 같은 인류 보편의 정서에 영향받아 쓰여졌다.
1876년, 차이코프스키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창간된 음악잡지 ‘누벨리스트’로부터 독특한 청탁을 받았다. 잡지 부록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달마다 그 계절의 정감을 담은 피아노 소품 하나씩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연주하기 그다지 까다롭지 않게라는 조건도 덧붙여졌다. 당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피아노 보급률이 높아졌고, 피아노를 배우는 귀부인들이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성공할 법한 기획이었다.
차이코프스키가 이 작업에 그다지 진지하게 임한 것 같지는 않다. 매달 원고 마감일이 되면 하인이 ‘표트르 일리치(차이코프스키의 이름), 원고를 보내실 날짜인데요.’하고 알려야 했고, 그제서야 차이코프스키는 피아노 앞에 앉아 새 달의 작품을 구상했다고 하니까. 그러나 일년이 지나 마감이 끝났을 때 전 12곡은 러시아의 독특한 정취와 민속, 서정이 담긴 꽤 매력있는 작품집이 됐다. 12곡은 ‘사계절’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열두 곡 중 가장 인기를 모으는 작품이 ‘6월, 뱃노래’ 와 이번에 소개하는 ‘10월, 가을의 노래’ 다. 지극히 선율적이며 센티멘털하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았다. 튀지 않는 중음역을 무대로, 산책하는 듯한 왼손 반주 음형에 미끄러지듯, 흩날리는 듯 움직이는 오른손의 멜로디가 사뭇 감각적이다. 샹송 가수가 그럴싸한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 노래해도 어울릴 것 같다.
이 ‘사계절’의 명연으로는 흔히 플레트뇨프의 연주(버진)가 꼽힌다. 그의 연주가 흠결을 잡을 수 없는 유려한 연주라는 데는 공감한다. 그러나 한가한 오후, 이 작품이 문득 듣고 싶어질 때 기자는 리디아 아르티미프가 연주한 샨도스사의 음반을 집어든다. 박자나 강약을 크게 변동시켜 겉멋을 내지 않은 순박한 피아니즘도 마음에 들지만, 따스함과 입자감이 느껴지는 특이한 녹음의 질도 좋다. 갓 짜서 거른 주스를 투명한 잔에 받아 든 기분이랄까.
오늘은 10월의 마지막날. 가을 겨울이 일찍 닥치는 러시아에서는 헐벗은 가지들이 눈을 한아름씩 안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조락의 계절은 이제부터다.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