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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을 말한다]연극 연출가 유홍영 "옛 꿈을 담았다"

입력 | 2001-11-01 18:34:00


1983년 어느날, 친구로부터 이중섭 화집을 선물받았다. 이중섭 그림을 보고 있으니 내 자신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어디론가 계속 향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나는 오랫동안 꿈꾸어 왔다. 화가 이중섭의 그림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을 무대에서 만나는 꿈을. 그 이미지를 배우들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무대에서 형상화해 보는 꿈을.

이번 작품 ‘이중섭, 그림 속 이야기’는 그 꿈의 소산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꿈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이중섭은 전쟁과 가난, 이별 등 참혹하고 파괴적인 현실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 어린이의 천진난만한 동심을 그렸다. 그는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평화롭고 행복한 꿈을 꿀 줄 알았던 사람이다. 이중섭은 또 천재 화가로, 드라마틱한 인생으로 주목받아 왔다.

나는 공연의 첫 출발점을 그의 삶보다는 ‘그림’ 그 자체로 하고 싶었다. ‘이런 그림이 되기 위해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이런 이미지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래서 배우들과 함께 이중섭 그림을 따라 그렸고, 다양한 오브제들을 직접 만드느라 우리의 연습실은 미술 공작실 같았다. 공연에 사용된 인형, 그림자, 슬라이드, 광목천 등의 오브제는 그 결과의 산물이다. 거기에 움직임을 덧붙여 나갔다.

연출에서는 언어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이미지극’으로 구성하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무대를 꾸몄다. 마임, 인형극 등 여러가지 형식은 아이들의 놀이처럼 재미있게 구성했고 전체적으로 한국적인 색감을 살렸다.

가난하지만 함께 부둥켜 안고 행복해하는 가족, 옹기종기 동네 공터에 모인 아이들의 놀이가 지난 시절의 옛 풍경을, 잃어 버렸던 꿈을 잠시나마 다시 떠올리게 해 줬으면 좋겠다. 극장문을 나서며 잔잔하지만 평화로운 꿈을 꾼 듯이.

(연출가·극단 사다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