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배낭여행자가 가장 싸고도 푸짐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면 '학생 식당' 이상을 꼽기가 힘들 것 같네요.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인 일본을 시작으로 여행한 탓에 처음엔 학생식당을 무지 다녔죠. 밥 값 싸고(비교적-_-; ) 밥 많이 주고. 게다가 대부분 식판을 들고 지나가며 고르는 식이라 주문하는데 별로 말이 필요 없으니 이보다 더 배낭여행자들에게 적격인 식당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중국에선 음식물가가 무척 쌌기 때문에 굳이 대학식당까지 찾아가서 밥을 먹어야 할 형편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것 각국의 대학식당들을 골고루 체험해보자고 시안((西安)에 있는 서북대학의 학교 식당을 찾았습니다.
우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정말 입이 딱 벌어지더군요. 대학식당이 완전히 체육관같았습니다. 음식메뉴도 3-4가지 한정된 메뉴에서 선택해야 하는 우리대학이나 10가지 정도를 놓고 골라먹는 일본의 대학과는 차원이 틀리더군요.
전체적인 모습은 대학입시철에 체육관에 각 학과별로 원서접수를 받는 창구가 4면으로 쫙 둘러져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비슷할 겁니다. 이런 음식을 파는 창구들이 체육관 4면으로 약 20여개정도 있고 가운데 좌석이 약 300-400여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창구별로 면파는 곳, 전골 파는 곳, 볶음밥 파는 곳, 반찬파는 곳, 간식파는 곳 등이 구별되어 있구요. 대충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시간은 어느덧 12시 경. 자, 그럼 밥을 먹자. 앗 그런데!
삼삼오오 모여드는 학생들이 뭔가를 들고 오더라구요. 한손에는 냄비,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보온물병. 오잉, 저게 뭐지? 뭐지?
몇분 지나니 한두명이 아니라 수십 수백명이 일시에 식당으로 몰려드는데 하나같이 한손엔 냄비, 다른 한손엔 똑같은 그 보온물병을 들고 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운 냄비를 손에 들고 학생들은 창구로 가서 오늘 일용할 양식을 바로 그 냄비에 받습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뜨거운 물을 보온물병에 받구요. 그리고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한 후 식사를 마치면 짬처리(뭔지 아시죠? 남은 음식버리는 것)를 하고 다시 냄비와 보온물병을 들고 나가더라구요. 아마도 냄비 세척은 다른 곳에서 하겠죠.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너무 놀라 우리는 우리 밥을 챙길 엄두도 못내고 구경만 하고 있었더랬습니다. 가만 보니 들고 오는 냄비는 동그란 그릇에 손잡이가 달린 형태이나 취향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다르더라구요. 스텐 냄비도 있고 양은도 있고 가끔 플라스틱도 있고, 또 여학생들은 꽃무늬가 그려진 이쁜 냄비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구요. 좀 우스웠던 건 냄비를 설거지하기 싫은 일부 게으른 학생들은 냄비를 비닐로 싸서(포장마차에서 떡볶이먹을때 그릇에 비닐 씌워주듯이) 음식을 타먹은 후 비닐을 낼름 벗겨서 쓰레기통에 버리더라구요.
그럼 저 커다란 보온병은? 나중에 안 사실인데 중국사람들은 차를 너무나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늘 뜨거운 물과 차가 가득 담긴 컵을 옆에 달고 산답니다.
그나저나 우리는 냄비가 없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정신을 좀 차리고 쭈뼛쭈뼛 카운터에 가보니 냄비를 안 가져온 사람에게는 1회용 도시락 통이나 별도의 그릇을 주긴 하는데 양이 좀 적거나 그릇값을 별도로 받더라구요.
그나저나 그릇도 해결된 듯하고. 우리의 고민은 이 수많은 메뉴로 옮겨 왔습니다. 그것도 어려운 한자 메뉴로. 체육관, 아니 식당 안을 몇바퀴나 돌며 고민하던 홍대리는 면 코너에서 '작작면(炸醬麵)'을 발견하고 그야말로 희열에 불타더군요. (홍대리는 자장면 광이거든요.) 중국 발음을 모르니 대충 조금 굴린 말투로 '챠챵멘'하고 주문을 했지요. 놀랍게도 음식코너 아줌마는 우리의 주문을 정확하게 간파하였고 조금뒤 기름기가 넉넉한 '챠챵멘'을 건네 주었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전 국민이 사랑하는 그 자장면과 이 '챠챵멘'은 차원이 틀린 것이었습니다. 우선 우리 자장면은 물기가 없이 걸쭉한 반면 '챠챵멘'은 기름을 듬뿍넣고 볶아낸 그런 것이었죠. 재료도 돼지고기를 갈은 것은 비슷하지만 '두부와 죽순'같은 것이 들어가는 것이 모양새도 맛도 전혀 틀렸습니다. 자장면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끼려했던 우리의 기대는 산산히 부서지고 먹는 듯 마는 듯하게 후루룩 면을 건져먹고 나니 그릇가득 고추기름만 가득하더군요. 오히려 생긴 모습은 짬뽕쪽에 더 가깝다고 해야겠네요. 맛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장면'을 기대했다간 후회만이 돌아올 뿐.
홍대리는 하루종일 한숨입니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났던가. 전화 한통이면 즉각 배달이던 그 천국 같은 곳을...
☞ 어디서 먹나요?
중국 여행중에 작작면을 파는 곳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식당마다 드문드문 이 국수를 팔긴 하더군요.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우리의 '자장면'을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그냥 전혀 새로운 요리를 경험한다고 생각하시길.
☞가격
홍대리의 작작면 그릇 대여 포함 2원(중국 1원=우리돈 약 150원)
눈치빠른 설마담은 작작면 대신 밥과 3가지 반찬을 시켜먹었고 가격은 2.5원
정말 무지하게 싸지 않습니까? 참고로 이 가격은 어디까지나 대학 식당 가격입니다. 일반 식당에선 면 한그릇에 보통 5원 이상, 밥될만한 요리 하나에 10원 이상은 줘야 하지요.
중국 여행 가셔서 시간이 되시면 대학 식당에 꼭 가보세요. 굳이 밥을 먹지 않더라도 점심시간에 맞춰 가시면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광경들을 볼 수 있답니다.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진짜 중국 다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으실 겁니다.
여전히 대학식당 매니아 꿈틀이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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