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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읽는 책]신완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입력 | 2001-11-02 18:47:00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필자는 ‘한국인은 어디서 온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아직도 매혹적인 주제로 생각하고 있다.

98년 사계절 출판사에서 번역돼 나온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는 이같은 나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책이다. 이 책은 1939년 르네 그루쎄가 쓴 ‘초원의 제국(L’Empire des stepps)’을 국내 출판사가 제목을 바꿔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을 배경으로 명멸했던 유목 제국들의 역사를 총괄하는 최초의 저작이다. 이에 비견할 만한 책으로는 룩 콴텐이 쓴 ‘유목민족 제국사’가 있으나 르네 그루쎄 책보다 40년이나 뒤에 집필된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룩 콴텐 책이 1984년에 먼저 번역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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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 민족은 중국의 역사서에 기원전 8세기 스키타이와 흉노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유목 민족이 세운 제국은 18세기 몽골의 마지막 제국, 준가르 한국(汗國)이 멸망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유목 민족이 세운 나라로는 훈 돌궐 몽골 티무르 등이 있다. 두 권의 책을 꼼꼼이 읽어 본 독자라면 유목 민족의 흥망에는 일정한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유목 민족이 세운 제국들에게는 극소수의 지배집단과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탁월한 지도력은 초원을 떠돌던 잡다한 무리들을 일거에 강력한 전사집단으로 탈바꿈시키곤 했다. 그렇다면 이 소수의 엘리트들이 지닌 장점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그들은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이란 인프라를 지니고 있었고, 유통수단인 말을 소유하여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군사력과 물자를 이동시킬 수 있었다.

필자는 유목민족의 한 갈래로 한반도에 정착한 한국인들이 어디서온 누구인가에 대해 흥미를 갖고 이 책을 몇번이고 읽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유목 제국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강하게 연상시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카리스마를 요구하는 지도력, 초원 고속도로라는 인프라, 말로 상징되는 기동력, 신속한 정보 유통 속도 등. 이는 유목 제국을 온라인으로 대체하기만 한다면 20세기말 시작된 인터넷 혁명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는 한국인의 핏속에 남아 있을 유목 집단의 유전자가 지식정보 폭발의 새로운 세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21세기 이 최첨단의 시대에도 여전히 역사는 미래를 비춰 주는 거울이다. (SBS 제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