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를 공동 수상한 랜디 존슨(왼쪽)과 커트 실링이 챔피언 티셔츠를 입고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랜디 존슨(38)이 3승을 올렸고 커트 실링(34)이 1승에 그쳤지만 과연 누가 월드시리즈 최고의 선수일까. 미국 기자들도 도저히 정답을 알 수 없었던 모양이다.
월드시리즈 사상 두 번째로 MVP를 공동 수상한 애리조나의 ‘원투 펀치’는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 만큼이나 정반대의 캐릭터와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운동선수치곤 드물게 ‘삼겹살 허리’를 자랑하는 오른손 투수 실링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에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 그는 김병현이 4차전에서 자신의 승리를 날려버렸을 때도 가장 먼저 달려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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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콧수염을 기른 왼손 투수 존슨은 2m6의 큰 키에 비정상적으로 말라보이는 몸매에서 느껴지듯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다. 감정의 기복이 좀체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키 큰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고 더그아웃 한켠에 웅크리고 있는 김병현에 대한 배려는 각별했다고 한다.
그동안의 성적도 좋은 비교가 된다. 둘다 88년에 데뷔했지만 실링이 잦은 부상의 아픔을 딛고 늦깎이 성공을 했다면 사이영상 3회 수상에 빛나는 존슨은 10년 이상을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통산 성적에선 존슨이 앞선 게 엄연한 사실이지만 실링은 뉴욕 양키스의 로저 클레멘스도 혀를 내두른 메이저리그 최고 구위의 소유자. 때문에 야구 전문가들은 실링을 항상 존슨과 같은 최고투수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지난해 시즌중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이적한 실링이 올해 22승을 거두며 21승에 그친 존슨을 앞서자 이들의 라이벌 의식은 깊어만 갔다.
하지만 막상 포스트시즌이 시작되자 이들의 자존심 경쟁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바꾸는 선의의 경쟁으로 변해갔다. 실링이 디비전시리즈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3연속 완투승 타이기록을 세우는 등 초반 4연승을 달리자 디비전시리즈 2차전 패배로 포스트시즌 7연패의 늪에 빠졌던 존슨은 이후 5연승으로 팀의 우승을 견인했다.
결국 이들은 5일 끝난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선발 실링, 구원 존슨의 필승 계투를 선보이며 포스트시즌 최초의 합작 9승을 따내 세계 야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원투 펀치’로 팬들의 가슴속에 남았다.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