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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근기자의 여의도이야기]"그럴줄 알았지"

입력 | 2001-11-05 18:45:00


9월말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주식갖기 펀드’의 성적표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정부가 증권사들을 재촉해 만든 이 상품은 한 달여가 되도록 총 판매고가 20억원에도 못미치는 최악의 상품으로 전락했다. 가장 많이 판매한 회사의 판매고가 고작 5억6400만원이고 아예 팔리지 않아 펀드 설정조차 못해본 투신사도 3곳이나 된다.

이 상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려보면 고작 이런 결과를 위해서 그렇게나 호들갑을 떨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 테러 사태 직후 대통령이 “주식갖기 운동을 하면 어떨까”라고 한 마디 하자 재경부는 곧바로 증권업계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증권사 사장단은 열일 제쳐놓고 몇 차례 모임을 가진 끝에 고육지책으로 ‘주식갖기 펀드’라는 듣도보도 못한 상품을 내놓았다. 미국 테러사태부터 상품의 첫 판매까지 걸린 기간은 보름에 불과했다.

최근의 판매실적에 대한 증권업계의 반응은 한 마디로 “그럴줄 알았다”는 것. 지금까지 정부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만들어낸 상품치고 잘된 상품이 없다는 얘기다.

주식갖기 펀드에 이어 나온 장기증권저축도 기대 이하의 실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2일 판매되기 시작해 보름여가 지난 현재 총 판매고는 1640억원 가량에 그치고 있다. 이 상품이 나올 때도 투자손실을 보전해주네 어쩌네 하면서 요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증권가에선 이를 두고 “정부가 졸속으로 추진하는 상품들은 대개 용두사미격으로 끝난다”고 꼬집는다. 상품을 만들기까지는 요란을 떨지만 막상 상품이 나온 다음에는 관심을 끊어버린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부가 가만히 있어주면 ‘용두용미’든 ‘사두사미’든 시장이 알아서 할텐데 괜히 나서서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진념 재경부장관은 지난해말 비과세근로자주식저축이 처음 나왔을 때 붐 조성을 위해 직접 증권사 객장을 찾아 계좌를 만드는 이벤트를 열었다. 진장관은 당시 1000만원을 목표로 하고 일차로 100만원을 넣었는데 최근 확인 결과 나머지 900만원은 추가로 넣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국정을 수행하느라 바빠서 그랬겠지만 웬지 ‘용두사미’라는 단어가 자꾸 겹쳐진다.

진장관은 지난달말 비슷한 이벤트를 갖고 장기증권저축에 가입했을땐 1000만원을 한 번에 불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상품은 차츰 잘될 징조라고 믿고싶다.

그러자면 “연 400%로 제한돼있는 매매회전율과 70% 이상으로 규정돼있는 주식 의무 편입비율을 완화해야 판매가 촉진될 것”이라는 증권업계의 요청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