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폭이 옷을 마구 벗어던진다. 그 가슴에 새겨진 문신, ‘라면은 역시 농심.’ (‘조폭마누라’)
#2. ‘현대 택배’ 차량이 험한 산길을 오른다. 차가 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르자 택배원들은 무거운 상자를 들고 절까지 배달한다. (‘달마야 놀자’)
#3. 검사가 킬러의 집 유리창을 박살낸 후 시계를 들여다 본다. 3초 후. 보안업체 에스원 차량이 신속히 도착한다. (‘킬러들의 수다’)
이는 한국 영화의 PPL(Product Placement·영화속 장면에 협찬사 상품을 자연스럽게 넣어 홍보하는 마케팅 기법) ‘오발탄’ 사례들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상품의 광고 효과를 노려 PPL 계약을 맺었지만 영화 제작진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실수 등으로 그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다.
첫 사례인 조폭마누라’는 영화속 소품인 라면과 스태프의 간식 라면을 ‘야쿠르트’가 협찬했다. 영화속에서 조폭은 야쿠르트의 ‘왕뚜껑’을 먹었으나 정작 야쿠르트가 협찬사인 줄 몰랐던 감독이 농심의 광고 카피가 코믹하다며 즉석에서 ‘라면은 역시 농심’을 문신에 넣는 바람에 야쿠르트의 항의를 거세게 받았다. 반면 농심은 돈 한푼 안들이고 500만 관객에게 공짜 광고를 한 셈.
개봉을 앞둔 ‘달마야 놀자’는 ‘현대택배’가 1500만원의 협찬금을 냈다. 차량과 배달 박스에 ‘현대 택배’의 로고를 노출시켜달라는 조건이었지만 이를 몰랐던 스태프가 엉뚱한 박스를 쓰는 바람에 협찬 제품도 아닌 ‘통돌이 세탁기’이름이 또렷이 나갔다. ‘현대 택배’측은 협찬금 반환을 요구하며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
세번째 사례인 ‘킬러들의 수다’의 ‘PPL’에 참가했던 업체는 ‘던킨 도넛’. 킬러들이 던킨 도넛을 먹는 장면을 찍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모두 잘려나갔다. 오히려 감독이 PPL과 관계없이 사용한 ‘에스원’이 ‘신속 출동’이라는 이미지를 챙겼다.
한국 영화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음에도 PPL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제품의 노출 빈도나 크기에 따라 구체적인 단가까지 매겨져 있는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제품만 제공할 뿐 돈을 내려는 기업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PPL 오발탄’이 자주 터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화 제작은 거의 사전 콘티대로 촬영이 이루어지나 국내에서는 촬영 도중 콘티가 바뀌고 편집에서 수시로 잘려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들이 PPL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 한국 영화 중 대표적인 PPL 성공사례로 ‘쉬리’가 꼽힌다. 유중원(한석규)이 휴대 전화로 이방희(김윤진)의 음성 메시지를 듣는 마지막 부분에서 “SK텔레콤 소리샘입니다”라는 말이 또렷이 들린다. 당시 SK텔레콤은 PPL 비용으로 3000만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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