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의 설계사로 민주개혁 세력을 이끌었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그루지야 대통령(73)이 10여년 만에 완고한 독재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는 5일 정부의 언론탄압으로 드높아진 야당의 사임 압력을 일축했다. 그는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사임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강변하고 “스스로 물러나거나, 죽거나, 탄핵을 당하지 않는 한 사임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야당의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 요구도 거부했다.
그루지야 사태는 지난달 30일 정부에 비판적인 민영 루스타비2 방송국에 보안군 병력이 난입한 데 항의해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시작됐다.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보안부 장관을 해임하는 것으로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려 했으나 여론이 거세지자 1일 내각을 해산했다. 그는 언론탄압에 대해서도 ‘아직 미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고통스러운 결정’이라면서 “그루지야에서 나보다 더 언론자유를 보장할 정치인은 없다”고 강변했다.
구 소련 외무장관과 공산당 정치국원 출신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보수파에 맞서 구 소련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으며 91년 소련 해체로 독립한 고향 그루지야의 국가회의(의회) 의장을 거쳐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나 95년 집권 후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는 등 과거의 정치적 소신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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