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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급한줄 알면서 여유만만…

입력 | 2001-11-08 18:18:00


30대 초반의 이모씨. 그에겐 고질적인 아주 나쁜 버릇이 한가지 있었다.

꼭 해야 할 일도 ‘질질거리며’(이건 그의 표현이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뒤로 미루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낭패를 당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좀체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심지어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하고서도 제 시간에 도착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머리속으로는 차 밀리는 것까지 따져서 ‘몇시에 떠나면 딱 알맞겠구나’ 미리 계산해 놓는다. 하지만 그 시간에 출발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공연히 서류 한번 더 뒤적이고, 하지 않아도 될 전화 걸어서 쓸데없는 얘기 길게 늘어놓고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가 아슬아슬하게 제시간에 닿기도 하지만 대개는 5분이고 10분이고 늦었다. 그나마 공적인 약속일 때 그렇고, 사적인 만남에는 30분 이상 늦기가 예사였다. 그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건 무슨 일이나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못하는 거였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고쳐지지 않는 걸 어쩝니까?” 그의 하소연이었다.

그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만약 자신이 다음 항목 중 하나라도 걸리는 데가 있다면 문제가 있다.

머리속으로는 꼭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첫째, 리포트나 보고서를 제 때에 끝내는 일이 거의 없다. 둘째, 지출항목을 점검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 셋째, 누군가에게 공적으로 전화하는 걸 몹시 꺼린다. 넷째, 새로운 일을 찾아봐야 할 때도 연기하거나 질질 끈다. 다섯째, 계획은 늘 세우지만 계획서만 덜렁 남는 일이 허다하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불안, 우울, 좌절감, 무기력, 패배의식 등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선 자신이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은지 면밀히 체크해 봐야 한다. 그밖에도 해선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계속 하고 있는 일은 없는지 따져볼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과식, 흡연, 음주, 자기 연민이나 자기 혐오에 빠지기 등이다.

그런 문제의 대부분은 성공이나 칭찬에 대한 비합리적인 사고와 감정에서 기인한다.

“난 실수나 실패를 해선 안돼!” “난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만 해!”

같은 생각들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자신의 그런 비합리적인 생각이나 감정과 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과연 그처럼 하찮게 스스로를 방기해도 좋은지 수시로 자문해 볼 필요도 있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