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대상인 서울시내 5개 저밀도 아파트지구 가운데 ‘노른자위’로 꼽히는 청담 도곡지구의 사업계획 승인이 상당기간 늦어질 전망이다.
관할 강남구가 재건축단지 선정에 앞서 재건축으로 인한 교통체증과 전세난 등에 대한 ‘실험평가’ 용역을 발주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기 때문이다. 전문기관이 조사 및 분석을 하는데 최소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보여 사업계획 승인도 그만큼 지연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대해 당초 이달 5, 6일경이면 어느 단지가 됐든 사업계획 승인이 날 것으로 기대했던 재건축 조합원들은 “서울시가 재건축 대상 아파트의 경우 순차적으로 재건축하기로 방침을 확정했기 때문에 강남구가 별도로 용역 조사를 하면서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해당 조합원들은 “강남구가 사업계획 승인을 늦출수록 수익성은 계속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구청측 입장〓강남구는 최근 ‘청담 도곡 저밀도 아파트지구 시기조정에 따른 대책회의’를 열고 한국감정원이나 부동산신탁회사 등 전문기관에 시뮬레이션 용역을 주기로 결정했다.
구청측은 “재건축 대상 아파트 9423가구 중 2500가구만 먼저 사업계획 승인을 내주고 나머지는 이후 순차적으로 재건축하라는 서울시의 ‘사업시기 조정안’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저밀도지구 아파트들이 한꺼번에 재건축을 할 경우 심각한 교통 문제와 전세난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 올 5월 ‘시기조정위원회’를 만들어 동시다발적인 재건축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강남구 관계자는 “청담 도곡지구는 재건축 후에도 용적률 제한 때문에 가구수가 현재보다 10%도 늘어나지 않아 동시에 재건축을 추진하더라도 큰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며 “이번 용역은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구청측은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우선 재건축 대상 규모를 2500가구 이상으로 늘리거나, 다음 순위로 밀린 아파트의 재건축 착수시기를 앞당겨달라고 서울시에 건의할 방침이다.
▽주민 반발〓해당 주민들은 강남구의 용역 발주가 책임 회피를 위한 ‘시간벌기용’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번 용역이 법적으로 아무런 구속력이 없어 강남구의 의도대로 결과가 나오더라도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
한 주민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구청장이 우선 재건축 대상에서 탈락한 아파트단지 조합원들의 원성을 살 것을 우려해 ‘잔꾀’를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담 도곡 저밀도 아파트지구 재건축 추진협의회장’ 최병윤(崔秉允)씨는 “구청장이 선거를 앞두고 집단 민원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고유권한인 사업계획 승인권을 행사하지 않고 불필요한 절차를 밟고 있다”며 “시간만 허비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요지부동〓서울시는 강남구의 용역 결과에 관계없이 현행 사업시기 조정 방침을 고수할 계획이다.
배경동(裵慶東) 서울시 주택국장은 “시 차원에서도 올 7월 시립대에 저밀도지구 재건축에 따른 교통 및 전세 문제에 관한 용역을 발주했다”며 “강남구가 청담 도곡지구에 대해서만 용역을 발주해봤자 서울 전역의 교통 흐름이나 전셋집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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