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 안젤름 키퍼(56)의 작품이 국내 팬을 찾아온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는 최근 새 전시 공간을 신축하고 16일부터 내년 1월27일까지 개관기념 ‘안젤름 키퍼’전을 마련한다. 독일 표현주의(객관적 사실보다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에 중점을 두는 미술사조) 전통을 이어받은 키퍼는 1980년대에 각광받기 시작해 9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술가. 1980년대까지는 나치와 유대인 등 독일 역사에 관심을 가졌고 91년 독일 통일 이후엔 독일을 떠나 프랑스에서 종교적 신화적 철학적인 미술 세계에 천착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대작인데다 대단히 상징적이라는 점. 출품작 20여점 역시 가로 5∼8m에 달하며 인간 종교 문명 등에 대한 깊이있는 천착을 보여준다. 작품 속엔 새와 고사리, 나뭇가지, 모래 등 인류의 시원을 상징하는 소재가 등장한다. 또 중세 연금술사 사이에서 기억을 담아내는 신비의 금속이라 불린 납을 캔버스 위에 씌우고 페인팅함으로써, 인간의 영원한 기억에 대한 탐색을 보여준다. 그래서 작품은 전체적으로 상징적이고 신비적이며 종교적이다.
‘탄호이저’는 납으로 14권의 책을 만들어 가시 덩굴과 함께 쌓아올린 설치 작품. 바싹 말라 죽은 가시덩굴이 책과 어우러지면서 말씀의 진리를 창조한다. 자연과 책의 만남을 통해 진리의 세계를 인도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주인공 탄호이저가 영혼을 구원받고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키퍼는 그 과정을 을씨년스러운 듯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로 연출함으로써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조해냈다. 그것은 곧 인간의 구원에 대한 탐색이라는 종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백화제방(百花齊放)’이라는 제목의 대형 회화도 눈길을 끈다. 화사한 양귀비를 배경으로 한가운데에 마오쩌둥의 전신을 삽입해 중국 문화혁명의 허구성을 상징적으로 폭로한 작품이다.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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