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배추를 뽑아야겠네. 날이 추워진다는데…. 이번 주말엔 김장을 해야겠어요.” 초면의 기자일행과 악수를 나눈 뒤 성큼성큼 학교 뒤 사택 쪽으로 앞서 걷던 정선자연학교 교장 남난희(南蘭姬·45)씨는 불쑥 김장이야기를 꺼냈다. 그를 좇아 뒷마당으로 돌아서자 통통하게 살진 배추들이 줄지어서 늦가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비료 하나 안 주고 키웠어요. 김장하고 장만 담그면 겨울 날 준비는 끝나는데…. ” 배추밭을 바라보는 남씨의 옆얼굴을 훔쳐 보며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던가’ 속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84년 한국 여성 산악인 최초로 76일 간 태백산맥 단독종주. 86년 여성 산악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7455m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봉 등정. 하는 일마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기록을 경신했던 ‘등반가 남난희’는 특히 체력소모가 심한 겨울등반에 유난히 신명을 내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겨울의 어귀에서 이제 산이 아니라 김장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설악산 대청봉에 눈이 소복히 쌓였다는 11월12일이었다. 》
#등산에서 입산으로
남난희씨가 운영하는 정선자연학교는 조양산 자락인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덕송리에 있다. 정선 읍내에서 진부방향으로 차로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지만 산과 강을 끼고 돌아앉아 읍내의 자잘한 소음이나 차로 40분 거리인 카지노촌 강원랜드의 아수라장으로부터도 호젓이 떨어져 있다.
1년8개월 전 폐교를 사서 이곳에 자연학교를 열기 전까지 남씨는 지리산 청학동에서 살았다. 92년 자신이 꾸리던 한국 최초의 여성 에베레스트 등반대 사업이 난항을 겪자 스스로 손을 뗀 후 남씨는 전문산악인으로서의 등반을 그만뒀다. “산에 오르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던 남씨는 93년 결혼을 했다. 그리고 94년 백일된 외아들 기범, 남편과 함께 서울을 떠나 청학동으로 내려갔다. 남편이 청학동 사진을 주로 찍는 사진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청학동에서 나올 때 가족은 일곱 살이 된 기범이와 남씨 두 사람으로 줄어 있었다. 95년 헤어진 남편은 지금은 불가에 입문해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자연학교에서는 무얼 가르치시나요?
“가르친다는 말은 좀 거창하고…. 자연학교에는 아이들도 오고 어른들도 옵니다만 저는 특히 아이들이 올 때가 좋아요. 날이 따뜻할 때는 강 주변의 돌을 맨발로 밟으며 걸어보기, 자기가 밭에서 뽑은 옥수수나 감자를 가마솥에 쪄서 익혀먹기, 봉숭아 물들이기 같이 아주 자연스런 체험을 시도합니다. ”
교실 두 개짜리 분교를 고쳐 만든 자연학교 수강생은 가족단위부터 직장, 각급 동아리까지 다양하다. 스스로 프로그램을 준비해오는 경우도 있고, 래프팅 산악자전거등 준비된 시설을 이용해 레포츠를 즐기다 가는 사람도 있다. 최대 수용인원 80명의 학교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주말마다 붐비지만 11월부터 2월까지는 방학이다. 그래도 남씨의 아들 기범이는 1년365일 결석 한번 하지 않는 자연학교 학생이다. 백일 때 부터 산자락에서 자란 기범이는 학교 친구들과 디지몬이야기로 열을 올리는 것 만큼이나 나무, 꽃, 동물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다.
- 이제 산은 안 타십니까?
“웬걸요, 아이와 함께 산에 잘 올라갑니다. 기범이가 돌 때 벌써 등에 업혀서 백두산 등반을 하고 온 아이라 그런지 제가 올라가는 대로 지치지도 않고 잘 따라 와요.”
-전문적인 산악인으로서의 등반에는 더 이상 도전하지 않으실 건가요?
“아뇨. 다시 할 겁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지역의 백두대간을 마저 올라서 백두대간 단독종주만큼은 마무리하고 싶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최초’로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남들 다 등반하고 난 뒤에 천천히 해도 돼요.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겠다는 저와의 약속만 지키면 되니까….”
-어떻게 욕망이 그렇게 줄어들 수 있던가요?
“예전에 산에 오른 것이 등산이었다면, 지금은 입산(入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시에 살 때는 그저 산에 올라가는 일에 목말라했는데 지금은 다 올라가도 좋고, 중간에 내려와도 좋고, 올라가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아요. 산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는 게 자연에 살면서 제가 얻은 겁니다.”
#내 삶의 무게를 다는 저울, 산
90년 남씨는 백두대간 종주 6년 만에 당시의 산행일지를 정리해 ‘하얀 능선에 서면’(수문출판사)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머리에서 남씨는 자신의 종주 이유가 당시 언론이 대서특필했던 것처럼 ‘국토의 얼과 맥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죽고 싶다는 극단의 허무감 때문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 이후로는 삶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셨어요?
“아뇨. 나한테는 왜 교통사고도 안 일어나나 그렇게 절망적일 때가 여러번이었죠. 그래도 단독종주를 할 때 정말로 생사의 기로에 서 본 경험이 나를 버티는 마지막 힘이 되더군요. 지금도 이런저런 일로 제게 ‘못 살겠다’고 하소연해오는 사람들한테 그럽니다. 백두대간 종주 한번 해보라고….”
-산악인이 아닌데 어떻게 살기 힘들다고 너도나도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겠어요?
“저한테야 산이었지만, 누구한테나 자기 삶의 백두대간같은 무엇이 있지 않겠어요? 히말라야 8000m 고지 오르는 일과 백두대간 종주를 비교하라면 저는 백두대간 종주가 10배는 더 어렵다고 말하겠습니다. 언제 눈사태가 일어나서 죽을지 모르는 히말라야 오르는 일도 어렵지만 거긴 올라갔다가 정상 정복만 하고 내려오면 되잖아요. 백두대간 종주는 산을 넘으면 또 산, 다시 령, 재 그렇게 끝없이 산과 맞닥뜨려야 하니 막막하죠. 사는 일은 히말라야보다는 백두대간 종주같은 것 아니겠어요?”
남씨는 경북 울진 전통적인 유학자 집안의 5녀1남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부산 경남여상을 졸업한 뒤 직장인으로서 취미로 산을 타기 전까지 그는 전문 등반가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남씨는 산이 자신에게 높이가 아니라 저울이었다고 말했다. ‘히말라야 8000m 고지에 내 몸을 올려 놓아보면 내 삶의 무게가 어떻게 저울질될까?’라는 질문이 자신을 끊임없이 산 위로 밀어 올렸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기 삶의 무게를 어디에든 달아보지 않아도 됩니까?
“요즘 제 일기장을 보면 ‘내일도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구절이 자주 눈에 띄더군요. 행복해야 한다고 작심했던 적은 없는데 요즘은 그냥 행복하니까 저 자신을 증명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계란 두알의 소박한 밥상
해가 저물자 남씨는 저녁을 짓겠다며 일어섰다. 간장에 절인 고추장아찌, 배추김치, 고들빼기 김치, 호박무침의 밑반찬에 남씨의 ‘농사선생님’인 동갑내기 옆집 아주머니가 햇콩으로 쑤어다 준 손두부가 별식이었다. 고기반찬은 순두부찌개에 깨어넣은 계란 두알이 전부. 칼로리,영양가 따져가며 요란스레 먹이지 않아도 기범이는 반에서 두 번째로 키가 큰 아이다.
“작년에 병아리를 사다 기른 중에 수탉 한 마리 암탉 두 마리가 살아 남았는데, 암탉들이 매일 알을 낳아요. 덕분에 기범이 하나, 저 하나 잘 먹고 단백질 섭취를 하지요(웃음).”
남씨는 “돈 들 일이 별로 없어서 궁색함을 모르고 산다”고 했다. 기범이가 남 다 다니는 학원 다닐 생각을 안 하니 사교육비 지출이 없다. 반찬으로 먹는 야채는 대부분 남씨가 텃밭에서 기른 것이다. 정선 읍내 장에 나가서 사다먹는 것이라곤 쌀 정도. 겨울 몇 달동안 방 두칸짜리 집을 덥히는 데 드는 기름값 20만원씩이 생활비 중 제일 큰 목돈이다.
▼자연속에 살려면▼
-요즘 도시의 젊은 사람들 중에는 귀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요.
“저희 식구 먹을 채소 농사 정도 짓는 걸 갖고 귀농이니 뭐니 말할 수 있나요. 다만 귀농할 작정이라면 먼저 여유를 비축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죽었던 땅심이 되살아나는 데만도 5,6년은 걸립니다. 그만한 세월을 기다릴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갖지 않았다면 귀농시기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해요.”
남씨는 자연학교에 와서 래프팅, 산악자전거, 하다못해 축구라도 하면서 정신없이 몰아치다가 어깨가 축 처져 돌아가는 도시인들의 뒷모습이 제일 처량하다고 했다. 모처럼 자연에 와서도 가만히 앉아 산을 바라보는 일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속에서 살려면 적막을 자기 호흡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농촌의 겨울밤은 참 길고 지루하죠. 그럴 땐 곰처럼 겨울잠을 길게 자는 게 지혜예요. 나무도 닭도 사람도 해 뜨면 눈 뜨고 해 지면 잠드는 것, 그게 자연의 순리인 걸요.”
그래도 잠 못 드는 밤, 그는 기범이와 자신이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몇해째 겨울을 날 때마다 다시 읽어, 바래고 닳은 박경리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올해도 아껴가며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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