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의 오버액션에 거부감이 들었다. 왜 있지 않은가? 말 많은 사람은 어딘지 믿음이 덜해지는거.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 모습이 어딘지 빈틈으로 보이고 정이 가는, 어떨땐 너무 어색해서 슬퍼 보이기까지 하는 용병이 있다. 이름은 안드레 페리다.
지난 7월에 있었던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구단 관계자 대부분은 현장에서 페리가 최고의 기량의 선보였다고 전해 왔다. 그리고 세달 후, 인터뷰를 위해 페리를 만났을 때 그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동료 용병과 뭔가 계속 떠들고 시끄럽고 과장되고 그랬다. 그런 모습 때문인지 실력이 정말 어느 정도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고, 현장에서 사진을 찍겠다며 즉석으로 드리블을 부탁했다.
그 ‘떠벌이’는 눈웃음을 한번 보이더니 쉴새없이 다리 사이로 볼을 돌리기 시작했다. ‘내 드리블 한번 감상해 보시지’라는 자신 만만한 모습이었다. 확실히 쇼를 방불케하는 화려한 드리블이었지만,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보다는 괜히 ‘정말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왠지 그렇게 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자 그는 ‘yes’라고 대답했다.
▽디트로이트를 떠나고 싶었다.
그의 신장은 196.8cm에 불과하지만 미국 프로리그에서 3번과 4번을 번갈아 맡았고, USBL에서는 놀랍게도 장신 센터들을 따돌리며 3년 연속 리바운드 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만큼 탄력이 좋다는 얘기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볼에 대한 욕망이 강했다.”라고 말한다. 적어도 농구에 대해서 만큼은 최대한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놀랍게 하는 것은 한가지 더 있다. 대학에 와서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했다는 그의 이력이다. 이렇게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까지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흑인들은 이런 것이 가능한가 보다. 하긴 그들에게 농구는 아주 가까이 있는 운동이니까라고 생각하다가 그럼 계속 공부를 하던가 직업을 구했어야지 왜 뜬금없이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을까? 궁금해졌다.
“고등학교까지 줄곧 디트로이트에 살았다. 답답했다. 더 나은 대학에 가기 위해 그리고 디트로이트를 떠나기 위해 농구를 시작했다.”
말하자면 농구를 위해 농구를 시작한 것이 아니고, 자기를 위해 농구를 시작했다. 그만큼 운동에 그리고 농구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원하는 대로 디트로이트를 떠나 알라바마 대학에서 선수로 뛰기 시작했고, 실력은 급속도로 늘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과 조금 다른 농구를 펼쳤다.
“선수로 뛴 것은 대학 시절이지만 그 이전에 농구는 많이 했다. 대학에 와서 팀에 소속돼 경기를 하니까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경기에서 정식이 아닌 플레이를 하니까 상대가 오히려 더 어려워 했다.”라며 웃어 보인다. 하지만 좀 서글펐을 게다. 분명히.
농구를 늦게 시작한 것이 한가지 문제를 만들고야 말았다. 더 좋은 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선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완성된 기량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때까지도 계속 성장단계에 있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 실력으론 NBA 진출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포지션에 비해 크지 않은 신장도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프로에서 몇 년 뛰면서 ‘NBA에 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이 생겼지만... 그때는 이미 나이가 너무 들어버린 후였다.”
▽페리는 슬픈 ‘떠벌이’
페리는 재밌고 한 없이 코믹해 보인다. 물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마찬가지다. 한국 선수들과 스스럼 없이 만나고, 음식 같은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
“한국 음식은 다 맛있다. 콩나물국, 된장찌게, 육계장 모두 좋아한다. 특히 ‘계란말이’를 너무 좋아한다.”
용병들 중에 이렇게 한국음식에 적응을 잘하는 용병이 있었을까? 다들 용병 음식은 따로 준비하는데... 이런 붙임성 덕에 페리가 있는 곳은 늘 웃음이 있다.
워낙에 사람을 놀라게 하고 특별한 구석이 많은 페리지만 그가 엄청난 ‘독서광’이라는 말은 정말 많이 의외였다. 이동하는 버스 안이나 식당, 어디든지 책을 들고 있다. 훈련이 끝난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 언제나 책을 읽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때는 한없이 진지해진다. 말하자면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는 엄청난 ‘떠벌이’로 변하고, 혼자 있을 때는 너무도 조용히 독서로 보낸다. 이렇게 기복이 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많은 슬픔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에게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양팔에 문신으로 새겼다. 이런 점 때문일까 페리는 다른 용병들과는 다른, 동양적이라든지 특히 한국적인 정서와 가깝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냥 단순한 떠벌이가 아니라 좀 슬픈 ‘떠벌이’였다.
▽농구에 대해서 물어봐라
페리는 31세의 총각이다. 용병들 중에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애인은 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또, 그 애인은 언제 한국에 오느냐고 물었더니, “당신이 알 필요없다. 농구에 대해 물어 봐라”라고 말은 끊는다. 무겁게 물어 본 질문이 아니었는데 다시 진지해져 버렸다. 그래서 얼떨결에 한국 농구의 인상에 대해 물었다.
“한국 농구를 본지 오래 되지 않아 어떤지 잘 모르겠다. 조금더 지나봐야 알겠다. 일단은 빠른 것 같다”
페리가 일방적인 떠벌이가 아니라는 것은 그의 이런 신중한 말에도 드러난다. 기본 적으로 페리는 농구에 관해서는 진지하다.
31세라는 그의 나이는 좀 걱정스럽긴 하지만 196.8cm 104kg의 체격은 KBL 파워포워드로는 이상적인 신체조건이다. 거기에 개인 기량은 이미 검증을 마친 상태다. 하지만 한가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페리와 같이 개인 기량이 뛰어난 선수는 이전에도 한국 무대를 밟은 적이 있다. 하지만 팀 성적과 그대로 이어진 적은 많지 않다. 지나친 개인 플레이로 팀웍을 해쳤기 때문이다. 페리에게 그런 점을 얘기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그런 지적을 받는다면 내가 팀에 맞춰서 나갈 것이다.”
그래야 할 것이다. 31세에 철이 없어 보이는 페리는 왠지 슬프면서 즐겁다. 그리고 이번 시즌은 페리를 바라보는 것도 틀림없이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알아들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페리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게임마다 잘할거고, 열심히 할거고, 내가 할수 있는 한 신나는 거 재밌는거 보여주고 싶다.”
▽페리는
1970년12월19일생 | 196.8cm | 103.8kg | 포워드 | 美 알라바마 大 | 발크기 320mm | 좋아하는 선수 케빈 가넷 | 2000~2001 USBL리그 27경기 출전/평균17.6득점(리그14위)/평균11.3리바운드(리그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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