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와 악수
민주당 한광옥(韓光玉) 대표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직후 총재권한대행에 임명된 한 대표의 활동반경이 ‘관리자’의 차원을 넘어서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당직자 인선을 마친 직후인 16일 경기 안양시의 한 택시회사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민심탐방’에 나섰다. 이어 한화갑(韓和甲) 상임고문이 대선 출정식을 가진 20일에는 경기 용인시 기흥읍의 강남대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그는 강연에서 “수많은 의견과 이익추구 방법이 존재하는 만큼 이에 따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조화’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리더십론’을 피력한 뒤 “정국을 운영하는 정치철학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서서히 ‘야심’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9월 대통령비서실장에서 당대표로 옮겨올 때부터 ‘큰 꿈’을 갖고 있었지만 10·25 재·보선 완패 때문에 잠시 몸을 낮췄다가 당 내분이 일단 수습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자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한 대표가 차기 당권에 뜻을 두고 있다는 얘기가 퍼져 나가면서 한화갑 김근태(金槿泰) 정동영(鄭東泳) 상임고문 등은 ‘의혹 반, 긴장 반’의 시선으로 한 대표를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한 대표는 과도체제의 수장이다. 당을 정상화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쇄신파의 한 의원은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당권에 욕심을 낼 수 있느냐. 한 대표가 욕심을 버려야 당이 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대표와 가까운 중도개혁포럼에 맞서 쇄신파 의원들이 ‘쇄신연대’를 본격 가동키로 한 것도 이 같은 쇄신파 진영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한 대표에 대해서는 다른 주자 진영도 견제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상임고문은 당무회의에서 한 대표에게 “핵심적인 당무는 상의해서 해야지 혼자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쐐기를 박기도 했다.
이인제(李仁濟) 상임고문측은 “한 대표의 행보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대선을 앞두고는 대선후보가 총재를 겸해야 한다”며 한 대표 체제가 과도체제임을 강조했다.
한편 한 대표의 측근은 “총재권한대행이자 대표로서 당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지고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며 “전당대회 준비위원장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고 억측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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