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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흐르는 한자]秋 毫(추호)

입력 | 2001-11-22 18:19:00


秋 毫(추호)

秋-가을 추 毫-긴털 호 狼-이리 랑 揮-휘두를 휘 披-헤칠 비 瀝-샐 력

秋는 벼(禾)가 햇빛(火)을 받아 고개를 숙인 모습에서 나온 글자로 ‘가을’을 뜻하며 毫는 毛와 高의 합성자로 이루어 졌다. 한자는 그 어떤 문자보다도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문자, 그래서 좀 뚱뚱하다 싶으면 다이어트까지 마다하지 않았을 정도다. 여기서 보는 毫가 완벽한 모습의 高자가 아닌 까닭은 글자의 미관을 위해 高자 밑에 있는 ‘口’를 생략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신은 마침내 세계 유일의 문자예술인 書藝(서예)를 탄생시키기까지 이른다.

却說(각설)하고, 高는 굳이 ‘높다’는 뜻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크다, 원대하다, 길다’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한자도 영어처럼 한 글자에 여러 뜻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무척 많다. 따라서 毫의 뜻은 ‘높은 털’이 아니라 ‘긴 털’, 좀 더 구체적으로는 ‘길고도 가는 털’을 말한다.

길고도 가는 털은 부드러우므로 붓을 만드는 데에도 사용된다. 대체로 양이나 여우, 산토끼, 족제비 등의 털이 여기에 해당되며 이 밖에도 호랑이와 사슴, 멧돼지, 말, 개의 털까지 즐겨 쓰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족제비의 꼬리털로 만든 붓은 狼尾筆(낭미필)이라 하여 중국에서도 특상품으로 인정해 주었을 정도다. 일명 黃毛筆(황모필) 또는 黃鼠筆(황서필)이라고도 했다. 여기에서 毫는 ‘붓’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어 붓을 휘둘러 글씨를 쓰는 것을 揮毫(휘호)라고 하지 않는가.

秋毫라면 ‘가을의 털’이 된다. 대체로 동물들은 여름에 실컷 먹고 가을이 되면 털갈이를 한다. 묵은 털이 빠지고 새로 나기 때문에 가을의 털은 몹시 여리고 가늘다. 솜털이라고나 할까. 여기에서 秋毫는 극히 ‘미세한 존재’를 뜻하게 되었다.

孟子(맹자)는 백성을 귀중히 여기는 소위 王道政治(왕도정치)를 주장했던 사람이다. 齊(제)나라의 宣王(선왕·BC 319∼BC 300)을 만나 자신의 정치관을 披瀝(피력)할 기회가 있었다.

宣王이 “나도 王道政治를 할 수 있겠소?” 하고 물었다.

“힘이 삼천 근(斤)을 족히 드는 力士(역사)가 새의 날개 하나를 들지 못하고, 視力(시력)이 가을의 털끝(秋毫)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자가 정녕 수레에 가득 실은 장작더미는 보지 못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그것은 宣王이 王道政治를 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정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먼저 德을 베풀 것을 강조한 말이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