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그늘에서/제인 구달 지음/444쪽 1만3000원
‘마이크는 높은 서열에 오르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마침내 최고가 되었다. 하지만 몇몇이 그에게 덤벼 들었고 그럴 때마다 돌을 집어 던졌다.’
‘데이비드는 겁쟁이였다. 말썽에 말려 들었을 때 더 높은 서열의 동료 뒤로 숨곤 했다. 그러나 정말로 화가 나면 매우 위험한 성질로 변했다.’(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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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언급된 마이크와 데이비드는 사람이 아니라 침팬지다. 영국출신의 세계적인 동물 행동학자 제인 구달이 쓴 침팬지 생태 보고서 ‘인간의 그늘에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96년 방한하기도 했던 구달은 그동안 60여권의 책을 냈다. 이중 국내에 소개된 ‘제인 구달’(사이언스북스)이 자서전적 내용이라면 ‘희망의 이유’(궁리)는 동물과 환경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담은 수필이다.
‘인간의 그늘에서’는 구달이 스물여섯살때 홀홀단신 탄자니아 곰비 국립공원으로 가 10여년간의 연구를 토대로 낸 야생 침팬지 생태 보고서다. 그후 20여년간의 연구 성과를 추가 보완 해 90년에 낸 개정판이 이번에 번역돼 나왔다. 명실상부한 그녀의 대표작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종인 챔팬지 사회에 직접 들어가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생활하면서 그녀만의 주관적이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침팬지 생태를 관찰해 정리해 낸 것이다.
그녀의 시도는 실험과 객관적 관찰만을 중시했던 기존 자연과학적 방법에서 벗어난 선구적인 것이었다. 이후 나온 개미의 생태 보고서인 에드워드 윌슨의 ‘개미’와 함께 동물 행동학의 고전으로 불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막상 숲속에 들어가 침팬지들에게 ‘그저 하얀 낯선 원숭이’로 받아 들여지기까지에는 말라리아 감염 등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위험을 겪었다. 숲속에 들어간지 반년만에 생애 처음 침팬지들과의 눈맞춤. 그녀는 이렇게 회고한다.
“태양이 지평선 위로 사라지기 바로 직전, 데이비드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황혼에 비친 내 그림자가 그와 만났다. 훗날 나는 가장 뛰어난 지능을 지녔다는 인간만이 침팬지 위로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즉 총을 소유하고 주거지와 경작지를 확장함으로써 오직 인간만이 야생 침팬지의 자유로운 모습위로 운명의 그늘을 드리울 수 있는 것이다.”(39쪽)
‘인간의 그늘에서’라는 책 제목은 여기서 따 온 것이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풀줄기를 이용해 흰개미를 잡아 먹는 침팬지의 행동을 밝혀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호모 파브르(Homo Fabre)의 명제를 뒤엎었다. 또 침팬지도 육식을 한다는 것을 밝혀내 ‘풀이나 과일만을 먹는다’는 학설도 뒤집었다. 그녀는 침팬지의 유아기, 유년기, 사춘기, 사회적 서열관계를 기록했으며 늙은 수컷 원숭이 ‘플로’를 통해 그들의 성생활도 관찰했다.
그녀의 침팬지 탐구는 결국 인간탐구였다. ‘침팬지도 사람처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나눠주고 분노하고 질투한다. 그러니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 운운하며 자연을 그저 이용과 도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오만을 버리자.’ 이것이 그녀의 메시지다.
그러나 침팬지는 지금도 여전히 인간식탁의 별미로 마구잡이로 사냥되고 인간병의 백신을 위한 실험재료로 사용된다. 야생 침팬지 보호기구인 제인구달연구소를 운영 중인 그녀는 요즘 기금마련을 위해 아시아를 여행 중이라고 한다. 동물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우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좋겠지만 고교생들이 보면 더 좋겠다. 최재천 이상일 옮김. 원제 ‘In the shadow of man’(1990).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