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MCI코리아 소유주인 진승현(陳承鉉)씨 총선자금 제공 의혹에 대한 수사 착수에 한걸음 다가섰다.
서울지검 고위 관계자는 23일 “여전히 수사 핵심은 지난해 수사가 미진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어제 (‘정치인 수사를 안 한다고는 하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도하면 어떻게 하느냐”면서도 언짢은 표정은 아니었다. 이런 저런 수사(修辭)가 동원됐지만 검찰이 정치권 수사를 위해 ‘1보 전진’했다는 신호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변화의 조짐은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가 로비자금 배급선 역할을 했다는 의혹과 ‘진승현 리스트’의 존재 가능성이 보도되기 전부터 일부 감지됐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최근 “지난해 5월 사망한 엄익준(嚴翼駿) 전 국정원 2차장이 4·13 총선 때 진씨의 로비자금을 정치권에 배급하는 역할을 했느냐”는 질문에 “부인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엄익준 역할론’이 퍼지면서 서울지검 수사진은 “검찰의 명운이 걸렸다”며 정치권 수사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진행상황을 잘 아는 검찰 인사는 “총선자금을 수사해도 어떻게 발표하겠느냐”며 내사가 곧 시작될 것임을 시사했다.
검찰로서는 정치권 수사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진승현 리스트’에 한나라당 의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국 돌파를 위해 야당을 겨냥해 수사한다’는 반발이 예상된다. 검찰로서는 표적수사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면서 성과도 내야 하는 만큼 절차와 결과가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성공 가능성’을 수사여부 결정의 핵심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울지검 관계자는 23일 “(정치인 수사라는 것이) 돈을 줬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운데다, 대가성까지 입증해야 하는 만큼 쉬운 수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97년 한보비리 사건 수사 때도 기소된 일부 정치인들이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선고를 받은 선례도 언급했다.
소리 없이 시작된 검찰 수사가 본격 궤도에 오를지, 혐의 입증에 실패해 내사 종결에 그칠지는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사팀은 ‘앞으로 열흘’에 승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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