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현금급여도 없는 반쪽짜리 국민건강보험제도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민의 건강보장 수준은 불평등 하향추세이면서 비용은 통제불능의 급등추세다. 이런 와중에 민간의료보험 도입, 개호보험 도입, 노인요양보험 도입 등 무모한 대안들이 고창되고 있고 막강한 의료권력은 ‘국민을 위해’ 정치세력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방만한 사적 의료시장에서 돈을 번 막강한 의료권력이 수지맞는 전문의 일색의 첨단기술 치료 위주로 중무장하고 건강보험제도 통제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강화된 의사세력에 의해 국민의 건강이 보장되는 일은 동서고금에 달리 없다. 또 상기한 여러 대안제도의 도입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애초에 잘못 구축된 의보제도 기반은 통합체제로의 근본적 개혁에 실패했다. 개혁과정에서 문외한의 인사가 위원장이 되고 일부 저돌적 개혁운동가들의 오만이 심사평가원의 독립과 의약분업까지 밀어붙이는 등 난맥으로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유례 없는 자유의료시장체제에서 의료보장을 위한 공적 조정 통제기제는 공단의 구매자독점권과 의료심사평가권에 불과한데 이것마저 상실한 것이다. 결국 비상대책으로 의약분업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제도도 폐지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안전망식 공적 부조에 치중해 온 미국에서 빈곤이 확대 재생산되고 경기침체에 직면하면서 1980년대 초 신자유적인 ‘생산적 복지’라는 사이비복지가 제시되었다. 영국에서는 최선진 복지국가의 과복지문제 해결방안으로 ‘제3의 길’로의 탈출구를 모색해 왔다. 김영삼 정권에서 초보적 복지기반도 못 갖춘 처지에서 이를 잽싸게 모방하여 ‘생산적 복지’의 기치를 들더니 김대중 정권에서는 한 수 더 떠서 이것을 ‘DJ복지철학’으로 이데올로기화하여 ‘탈상품화가 아닌’ 신발명품처럼 선전하여 혼란스럽다.
이런 왜곡들은 비복지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되며 일부 ‘복지학자들’의 부화뇌동에 의해 강화된다. 그 근본원인은 정권교체 시마다 반복되는 ‘패거리식 바람몰이문화’의 일회성 잔치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광 찬(원광대 교수·사회복지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