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의 김모 과장. 얼마전 그는 씁쓸한 일을 겪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그가 일하는 부서에 한 젊은 친구가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돼 왔다. 다행히 그는 나이답지 않게 예의 바르고 정중했다. 돌아가며 사람들에게 많은 충고를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람 좋은 김과장은 실제로 상대방이 충고를 원할 때마다 덥썩덥썩 자기 생각을 말해 주곤 했다. 그렇게 해서 친해지다 보니, 때로는 좀 은밀하다 싶은 사생활 얘기까지 오고갔다. 그럴 때도 김과장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충고를 늘어놓곤 했다. 가끔 수위조절이 안될 땐 충고가 약간의 비난으로 바뀔 때도 있었다. 물론 그건 순전히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자기 속내 얘기를 털어놓고 자문을 구하는 사람을 못본 척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러던 중, 김과장은 동료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 젊은 친구가 김과장 흉을 보고 다니는데, 그 내용이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주제 넘은 충고나 비난도 서슴치 않는 사람이란 거였다. 하느님 맙소사! 김과장이 맨처음 느낀 생각은 터무니 없다는 거였다.
분명 제 편에서 먼저 이런저런 일에 대해 선배 생각은 어떠냐? 나로선 아무래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시간 있으면 내 얘길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하고 나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야말로 성심성의껏 들어주고 충고까지 해줬더니 이제 와서 그걸 비방해? 김과장으로선 기막힌 게 당연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건 바로 충고의 양면성이랄까 이중성 때문이다. 우리는 남이 자기 얘길 털어놓으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뭔가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그때 가장 손쉬운 것이 충고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충고하고 때로 비난하며 단정적인 말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 얘길 털어놓을 땐 결코 자기에 대한 평가나 충고를 원해서가 아니다. 단지 이해받고 격려받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물론 우리는 때로 상대방이 보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얘기도 아주 조심스럽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100% 객관적인 평가나 충고란 인간관계에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의 선입견, 편견, 비합리적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에 대한 평가나 충고는 속으로만 하는 게 좋다. 설령 상대방이 원한다 해도 절대 한 수 가르쳐 준다는 자세로 충고해선 안된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야 김과장은 비로소 자기의 실수를 깨달았다.(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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