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이 곳곳에서 새고 있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확인됐다. 공적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정확하게 따지지도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지원한데다 사후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공적자금 투입은 정책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공무원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부실기업 소유주와 부실금융기관 임직원 5281명에 대해 재산을 압류하고 60명을 검찰에 고발한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이번 감사가 정부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사원이 지적한 구멍 뚫린 공적자금 관리 사례는 한국사회의 모럴해저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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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과다 지원〓금융감독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1998년 7월부터 2000년 6월까지 동화은행 등 12개 부실은행과 한국 및 대한투자신탁의 실적배당 신탁상품 손실을 메워주기 위해 공적자금 4조4158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실적배당 신탁상품은 예금보호대상이 아니므로 지원할 필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예보는 또 1998년 9월 예보채 10조원어치를 발행하면서 채권이자 하한선을 연 10%로 정했다. 그러나 2001년 9월 시장평균이자율은 연 8.3%였다. 금리를 잘못 정해 이자를 4400억원이나 더 부담하게 됐고 이는 공적자금으로 채워졌다.
자산관리공사는 1997년 12월 13개 은행의 후순위채권을 살 때 1조1000억원어치를 더 매입했다.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서였지만 자본금 인정한도보다 훨씬 더 사줬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금감원은 1998년 4월 영업정지 상태이던 대한종금과 나라종금이 분식결산을 해서 BIS비율을 높게 산정했는데도 이를 그대로 인정해 영업을 재개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두 종금사는 1∼2년 뒤 문을 닫음으로써 부실규모가 커져 공적자금 부담이 2조3353억원이나 늘어났다.
이밖에도 예보는 1999년 2월과 2000년 11월 조흥은행의 자산재평가적립금을 당기결손금으로 상계처리하지 않고 H은행의 보유주식을 낮게 평가해 공적자금 3700억원을 과다하게 지원했다. 자산관리공사는 1997년 11월 회수가능성이 불투명한 16개 종금사의 부실채권 1조3800억원어치를 비싸게 사들여 73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공적자금 회수 지지부진〓감사원은 금융기관이 문을 닫아 예보에서 대신 물어준 예금(23조5000억원)과 부실금융기관의 자산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지원한 출연금(15조3000억원)등 38조8000억원 가운데 8조원만 회수되고 30조원 이상은 회수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또 은행과 투자신탁 및 서울보증보험 등의 자본금으로 들어간 출자금 44조2020억원도 증시침체로 이른 시일 안에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지적됐다.
반면 앞으로 갚아야 할 예보채 원리금은 9월말 현재 114조6211억원으로 추정되고 2003년부터 2006년까지 84조57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부실금융기관을 정리하기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앞으로는 빚을 갚기 위해 공적자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실기업 및 부실 금융기관 관리 소홀〓문을 닫은 K은행 등 28개 금융기관의 파산재단은 골프회원권 76개(취득가 107억원)를 갖고 있었다. 이들 회원권은 시중에서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팔려고만 하면 언제든지 취득가보다 높게 매각할 수 있었다. K은행 등 15개 파산재단의 파산관재인 47명은 이 회원권으로 1998년 5월부터 2001년 3월까지 272번이나 업무와 무관하게 근무시간에 골프를 친 것으로 드러났다.
2월 현재 금융기관 파산법인은 234개. 설립된 지 평균 1년6개월이 지났는데도 파산절차를 끝낸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이들 파산법인이 쓰는 돈은 연간 540억원이나 된다. 그만큼 공적자금이 새고 있는 것이다.
예보는 서울은행 등 9개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19조원이나 지원하면서 경영정상화 이행계획(MOU)도 맺지 않았다. 뒤늦게 추가로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MOU를 맺었지만 MOU 위반사실을 적발해도 묵인하거나 단순히 주의를 촉구하는 등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hcs@donga.com
▼특감 후속조치▼
29일 감사원의 공적자금 특별감사 결과 발표로 금융부실 책임자 등에 대한 검찰수사 및 공적자금 부실운용 관련자에 대한 문책, 법적 제도적 보완장치 마련 등 후속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4억달러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4개 부실기업과 관련 대주주 8명을 지난달 말 검찰에 수사의뢰하는 등 금융부실 및 공적자금 횡령 관련자 60명을 고발 또는 수사의뢰했고, 검찰은 이미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또 감사원이 징계를 요구한 금감원 등 감독기구 책임자와 금융기관 임직원 60명에 대한 문책도 이뤄질 전망이다.
감사원이 새롭게 밝혀낸 부실책임자의 본인 재산(2732명 5조6354억원)과 증여 재산(691명 4143억원)에 대한 채권확보 작업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예금보험공사는 일단 관련자료를 넘겨받아 정밀 검토, 은닉재산 여부를 확인해 환수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특히 배우자 자녀 등에게 재산을 위장 증여한 채무면탈행위에 대해선 가압류소송 등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분식회계에 참여한 4개 회계법인에 대해선 금감원에서 일단 고의성 여부 등을 확인한 뒤 회계법인이나 회계사에 대한 고발 조치와 행정상의 제재조치가 이뤄지게 될 것이다.
특감 결과 나타난 법적 제도적 허점에 대한 보완조치를 포함해 공적자금 관리체계의 대수술도 불가피하다. 감사원은 97년 말 예금자보호법 개정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의 요구로 보호대상예금에 포함된 신용협동조합의 예금을 보호대상에서 뺄 것과 양대 투자신탁회사의 통합 등 여러 가지 개선책을 권고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정책담당자의 오판(誤判) 등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아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감사원은 이헌재(李憲宰) 재경부장관 시절인 지난해 5월 정부는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할 필요가 없다고 천명했다가 뒤늦게 추가조성에 나서는 등 정부 정책의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판정하고도 책임자 문책은 배제했다.
또 제일은행 헐값매각 논란과 관련해 ‘저가에 매각한 아쉬움은 있다’고 하면서도 당시의 불가피했던 상황논리를 인정해준 대목도 정치적 공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