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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칼럼]또 외국인 선수가 문제인가-LG세이커스

입력 | 2001-11-29 19:56:00


농구를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골 밑’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거다. 만화에서 나오는 “뭐를 제압하는 자가 승리한다”식의 말보다도, 당장 자기 팀의 골 밑이 상대팀의 장신 선수들에 의해서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을 때의 그 심정이란은 아마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마치 올림픽에 나간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 선수들의 심정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 ‘골 밑’의 중요성은 아마추어 농구나 NBA, 심지어 KBL조차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NBA의 뉴욕 닉스라는 팀 센터인 마커스 캠비가 부상자 명단에서 돌아와 시즌 첫 경기를 치른 바 있다. 비록 평상시 기록에 비해 수비가 형편없는 선수, 부상을 달고 다니는 선수, 공격이라곤 덩크와 오른손 훅 슛 밖에 못하는 선수라고 비아냥을 듣던 선수이긴 하지만, 뉴요커들은 그의 복귀를 내심 손꼽아 기다려왔다. 전미에서 가장 위력적인 슈팅 가드 듀오인 ‘트윈 테러(앨런 휴스톤과 라트렐 스프리웰)’를 보유하고 있는 닉스라도 마커스 캠비가 골 밑을 지켜주지 않는 한 이길 수 없다는 건 벌써 증명됐기 때문인데, 왜냐하면 스틸과 몸싸움을 즐겨 하는 닉스의 수비 성격상 아무래도 골 밑 가까이에서 이지(easy) 슛 찬스가 많이 날 수 밖에 없고, 그 때 캠비의 헬프 수비만이 이 팀의 ‘믿을 수 있는 구석’이기 때문이다. 또 커트 토마스란 단신의 파워 포드 밖에 없는 팀 사정상 211cm와 긴 팔을 가진 캠비야말로 그 부문에서 팀 내 가장 확실한 ‘진정한’ 센터이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론 그를 센터로 부르기가 좀 거북하다). 실제로 그의 복귀 후 닉스는 슬슬 예전 강호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바다 건너 KBL의 상황은 어떤가?

여기 비슷한 문제로 고민 중인 팀이 하나 있다. 창원 LG 세이커스. 초반 4연승을 할 때까진 좋았지만, 그 후 연패를 거듭한 끝에 최악의 상황에 놓여져 있다. 사실 지난 시즌 KBL를 강타한 LG 세이커스의 공격 농구는 정말 놀랄만 했다. 경기 당 100점을 넘는 초과하는 득점력과, 조성원으로 대표되는 ‘3점슛 우선의 농구’. 아마도 일반 농구 팬들은 이런 LG의 외곽 슛 위주의 농구야 말로 진정한 ‘한국형 농구’, 더 나아가 국제 무대에서 한국이 중국을 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보았기 때문에 더욱 LG의 농구에 열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년 결승전에서 LG는 높이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농구(주희정이 있기 때문에 속공을 생각하기 쉽지만, 작년의 삼성은 맥클레리의 일 대 일에서 공격을 시작하던 하프 코트 오펜스가 굉장히 강력한 팀이었다)에 밀려 결국 우승을 차지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 열린 2001-2002시즌에서 LG는 고질적인 약점인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198cm의 장신 포드 ’송영진’을 영입했고, 그 덕분에 시즌 전 예상에서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세이커스를 우승 후보 제 1 순위로 지명하기도 했었다. 높이가 강화된 LG에게 있어 더 이상 약점은 없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마치 전 시즌 삼성이 갑자기 강해졌던 것처럼 말이다.

전문가들은 다들 송영진이 이규섭만큼은 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터프한 몸싸움과 다양한 포지션이 가능한 멀티 플레이어의 역할을 말이다. 하지만 현재 LG의 성적은 고작 6승 6패에 불과하며, 이 부진의 원인은 역시 골 밑이었다. 1라운드 초반 가공할 외곽 슛으로 다른 팀들의 수비를 붕괴시키던 공격력은 지난 시즌과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올 시즌 경기 당 103득점) , 골 밑 부분에 있어선 선수 보강에 비해선 별로 나아진 느낌이 들지 않는다. 특히 기대를 모은 대졸 최고의 신인 송영진이 고작 14.2득점/3.8리바운드/2.4어시스트/2실책/50%의 야투율/27%의 3점 슛률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는 게 팀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일 거다. 198cm의 신장을 가지고 있고, 대학 최고의 ‘수직 점프 능력자’ 중 하나인 그가 3.8리바운드(이 정도 수치는 가드가 잡아야 하는 숫자다) 밖에 잡지 못했단 점은 앞으로 프로에 입단할 많은 대학 유망주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시즌 중 송영진은 프로 선수들과의 몸싸움을 견디기 위해 체중을 10kg 정도 불렸고, 그 결과 순간적인 스피드나 운동 능력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하게 말하자면 송영진은 현재 ‘키 크고 느린 3점 슛터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셈이다. (실제 경기에서도 그보다 조우현이 라인업에 들어갔을 때 더 경기가 잘 풀리고 있다.) 개인적으론 오히려 기존의 체중을 근육으로 바꾸면서 기술적인 면을 강화하는 게 낫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현재 송영진의 몸 컨디션은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대학 시절 송영진은 투핸드 덩크를 경기 중 성공시킬 정도였었다). 만일 송영진이 올 시즌 끝날 때까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올해 창원 LG 팬들이 다시 한 번 결승전에서 세이커스를 응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긴 힘들 거 같다. (솔직히 LG의 부진의 원인을 에반스의 능력 부족과 이버츠의 ‘소프트한’ 플레이가 문제라고 신문이나 구단에선 떠들어대지만, 이버츠의 이런 플레이는 어제 오늘의 문제-문제라고 할 것도 없는게, 대신 그는 더 많은 것을 팀에 기여한다–가 아니었고, 에반스의 능력 부족은 시즌 전 바꿀 기회가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잘 봐줘야 프런트 혹은 벤치의 무능 혹은 태만으로 봐야 한다. 특히 무슨 문제만 있으면, 외국인 선수 탓을 하는 LG 프런트의 ‘병폐’는 이제 신물이 날 정도다.) 또 하나 LG가 부진한 이유는 이버츠나 에반스, 송영진의 신장은 좋지만 상대편 빅 맨들이 이들의 높이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시즌 전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점이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비 전술이 전무하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점이라고 봐야 한다.

정리해보면 현재 창원 LG의 슬럼프는 단순히 선수들의 부진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단순히 3점슛이 잘 들어가면 이기고, 안 들어가면 지는 단순한 농구를 한다면 감독이나 코치는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선수가 부진할 때 그 선수 대신 다른 선수를 기용하거나, 그 선수를 슬럼프에서 끌어낼 수 있는 전술을 개발하는 것 등이 결국 코치진에서 할 일이 아닐까? 외국인 선수의 교체를 하면 된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문제점들이 모두 고쳐진 경우의 일이다. 더구나 몇 개월간의 탐색을 거쳐 뽑은 외국인 선수를 내 버리고, 몇 일간의 자료 검색으로 뽑은 외국인 선수가 얼마만큼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을진 정말 모를 일이다. 슬럼프를 벗어나고, 보다 강자다운 농구를 하기 위해 창원 LG에게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보다 ‘창원 LG’ 다운 농구를 하는 것 같다. 보다 더 공격적이고, 수비에 있어서도 보다 더 적극적인 농구를 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송영진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해야할 일’을 하라는 것이다. 창원 LG에서 그를 뽑은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그가 기존의 LG가 가지고 있지 못했던 높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할 플레이는 뻔한 거 아닐까? 창원 LG에서 3점 슛을 던질 선수는 그 외에도 충분하며, 송영진이 팀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부분 역시 3점 슛 이외에도 아주 많이 있다. 그런 점을 빨리 깨닫지 못한다면 송영진은 그의 대학 은사와 함께 ‘몰락하는 팀’의 일원이 되고 말 것이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공격력과 최고의 수비력을 동시에 지닌 농구팀은 아마도 1992년 드림 팀 이외에는 없을 듯하다. 지난 시즌 최고의 공격력을 보였으며, 올 시즌 역시 최강의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는 창원 LG. 그들은 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최고의 수비력을 얻기 위한 모험(공격력 감소를 감수하고)을 감행했고, 현재까지는 그 결과가 별로 좋지 않다. 다만 이들이 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다면, KBL에서 당분간은 ‘창원 LG 세이커스’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당장’ 김태환 감독의 분전이 있어야 한다. 창원 LG 세이커스가 다시 한 번 강팀의 면모를 보여주길 바란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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