抽-뽑을 추 籤-제비 첨 獸-짐승 수
蓍-시초 시 龜-갈라질 균 筮-시초점 서
아직 人智(인지)가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 인간은 자연의 위력 앞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이 恐怖(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인간은 너무도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각종 猛獸(맹수)와 毒蛇(독사)도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였다.
자연히 인간은 조금이라도 恐怖를 줄이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으니 하나는 자연을 人格化해 열심히 섬기는 것과 또 하나는 吉凶(길흉)을 미리 알아내고 대처하기 위해 占(점)을 치는 것이었다.
중국의 경우, 占을 치는 재료로는 주로 거북이 배 껍질과 蓍草(시초·톱풀)라고 하는 풀을 이용했다. 전자는 避凶就吉(피흉취길·흉한 것을 피하고 길한 곳으로 나아감)함으로써 長壽(장수)한다고 여겼던 거북이의 靈驗(영험)을 이용한 것이며, 후자 역시 蓍草의 신령스러운 힘을 이용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蓍草가 나는 곳에는 호랑이가 깃들이지 않고 독초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태평성대가 되면 蓍草의 줄기가 한 길이나 자라고 한 뿌리에 무려 백 줄기나 돋는다고 한다.
이처럼 말린 거북의 배 껍질을 달군 송곳으로 뚫어 그 龜裂(균열)을 보고 길흉을 占친 것을 卜(복)이라 하고 蓍草를 이용한 점을 筮(서)라 하였다. 실제로 ‘卜’자는 龜裂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다.
후에 오면 占을 치는 방법도 바뀌어 거북이는 그다지 이용되지 않았고 蓍草도 대나무 쪽으로 바뀌게 되는데, 그것을 籤(첨) 또는 竹籤이라고 했다.
즉 대나무를 길이 한 뼘 정도로 잘라 얇고 가늘게 깎아 여기에다 번호를 적은 다음 竹筒(죽통·대나무 통) 속에 넣는다. 이와 함께 韻語(운어·시처럼 韻字로 이루어진 글)를 적은 종이쪽을 걸어놓고 竹筒을 흔들어 그 속에 있는 竹籤 한 개를 뽑아 해당되는 번호의 韻語를 해독하는 것으로 吉凶을 점쳤다. 마치 算筒(산통)을 흔들어 算木(산목·산가지)을 뽑아 점을 치는 算筒占(산통점)과 흡사하다 하겠다.
抽籤이란 우리말로 ‘제비뽑기’다. 본디 竹筒 속의 竹籤을 하나 뽑아 내는 것을 말했던 것으로 일명 求籤(구첨)이라고도 했다. 국가의 命運(명운)과 吉凶이 이 하나로 결정되었으니 그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후에 오면 사안을 결정할 때에도 즐겨 抽籤의 방법을 이용하게 되었다. 본디 吉凶을 점치기 위했던 것에서 지금은 여러 가지 목적에서 사용되고 있다. 내년 월드컵 축구대회의 組(조) 抽籤이 1일 거행됐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