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연예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서태지와 음치가수 이재수의 패러디 논쟁은 일단 서태지의 판정승으로 결말났다. 서태지의 진지한 노래 ‘컴백홈’을 변기에 앉아 부른 노래 ‘컴배콤’으로 바꿔버린 이재수를 보면서, 그 기발한 비틀기 전략에 웃음을 지은 사람도 많았겠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진정한 패러디란 존재하지 않고 그걸 가슴 열고 즐길 만한 문화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그에 비하면 미국인들은 패러디에 상당히 관대한 편인 것 같다. 작년 여름 우리 극장가에서도 개봉해 인기를 끈 ‘무서운 영화’는 ‘스크림’에서 ‘매트릭스’까지 온갖 영화를 패러디해 세계적으로 1억6000만 달러라는 놀라운 흥행 실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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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0여개 영화의 주요 장면을 뒤틀고 비틀어 새롭게 재구성한 이 영화는 기존 영화 스타일과 관습을 조롱함으로써 통렬한 웃음을 선사하는 패러디 영화의 진수로 찬사를 받았다. 그런 만큼 속편을 기다린 팬들도 적지 않았을 터.
▼전작 못지않은 패러디의 향연▼
전편의 2배에 달하는 4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무서운 영화 2’는 10대 공포물을 주로 패러디한 전작과 달리 심령공포영화의 고전 ‘엑소시스트’의 유명한 장면들을 베끼고 ‘헌티드 힐’ ‘더 헌팅’ 같은 공포영화의 얼개를 빌려와 ‘미녀 삼총사’ ‘미션 임파서블 2’ 등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끈 다양한 장르의 요즘 영화까지 패러디 영역을 한층 넓혔다.
어린 소녀가 귀신들려 죽었다는 소문이 도는 한 저택으로 대학교수 올드먼과 그의 제자들이 모여든다. 올드먼은 유령의 정체를 벗겨 이름을 떨치려는 욕심으로 ‘악령의 집 프로젝트’를 빙자해 학생들을 불러모은 것. 그중 한 명인 여학생 신디는 우연히 이 저택의 주인이었던 휴 케인이 정부와 함께 집 안에서 살해되었다는 신문 스크랩을 보게 된다. 그 후 학생들은 저마다 갖가지 기괴한 사건을 겪게 되고 온갖 유령과 사투를 벌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패러디의 향연을 원작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여전히 쏠쏠하지만, 화장실 유머의 극단을 보여주는 몇몇 장면은 ‘악’소리 날 정도로 비위가 상한다. 전작에서도 각종 체액과 성기에 관한 직설적인 유머가 난무해 ‘할리우드 주류 영화사상 가장 성적으로 노골적인 영화’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속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대사와 장면이 야하고 천박하며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성적 코드 역시 상상을 뛰어넘는다.
난잡하고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는 몇 년 새 할리우드 영화의 대세를 점하고 있다. 문화연구가 로버트 나이트는 이런 코미디 영화에 대해 “인간의 고상함을 거스르며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은 충격을 주는 영화”라 평했다. ‘무서운 영화’ 같은 작품도 미국에서는 유치함 속에 재치와 해학을 담은 영화로 나름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저속하고 유치한 것을 싫어하는 우리 관객들에게도 과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