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발언대]김진성/교단갈등 부추긴 ‘정년논쟁’

입력 | 2001-12-04 18:24:00


어느 시골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서울역 부근에 조선시대에 건축한 큰 대문이 하나 있는데, 그 대문 현판 이름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한 사람이 “내가 서울 가서 봤는데 ‘숭례문’이라고 적혀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숭례문이 아니라 남대문이라고 우겼고, 숭례문이라 주장한 사람은 주눅이 들어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서울 가본 사람과 가보지 않은 사람이 싸우면 가보지 않은 사람이 이긴다고 한다.

교육 문제를 논의할 때 보면 학교에 가보지 못한 사람, 학교 실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큰소리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 방송사가 1100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화로 ‘교육정책 여론조사’를 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62.6%가 정년연장은 잘못된 일이라고 했고, 62.2%가 정년연장이 교원의 사기진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으며, 61.8%가 교사 부족현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국민은 교원정년 연장에 대해 그 어떤 의견도 말할 수 있다. 다만 일반 시민이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고 어떻게 학교 속사정을 그렇게 잘 알고 대답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교원정년으로 일어난 문제는 그 분야 전문가에게 물었어야 했다.

당사자인 교원들이 정년 연장 시켜주면 사기가 진작될 것이라고 하는데 일반 시민이 “아니오”라고 하고, 교원 수급 문제를 알 길이 없는 일반 시민이 교원 부족현상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응답하는 것은 어쩐지 찜찜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학교는 평온했다. 그때라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학교 붕괴’ ‘교육 이민’ ‘학력 저하’라는 말은 없었고, 선배교사와 후배교사간에 우의도 돈독했다. 이런 분위기는 정년단축을 추진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세대간의 갈등이 조장되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정치란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정치권의 정년 단축 논란은 세대간 갈등만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교육은 여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교육정책은 정치논리가 아닌 교육 논리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

김 진 성(명지대 객원교수·전 구정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