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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의 대인관계클리닉]과거에 발목잡히지 말자

입력 | 2001-12-06 18:16:00


스스로를 시시한 삼류 인생이라고 여기는 김모씨. 덕분에(?) 한 해를 보내는 감회가 늘 비슷하다. 언제나 그렇듯 올 해도 역시 이 땅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자의 고단함과 서러움을 톡톡히 체험했을 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잘난 것, 좋은 것은 늘 자신과 거리가 멀었다. 밝고 환한 것? 물론 그의 몫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철저하게 음지의 인간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품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그는 친척집을 떠돌며 성장기를 보냈다.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이 악물고 공부했지만, 전혀 원하지 않던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 일이 그렇게 진행될 때부터 그는 이미 자기 인생이 결코 주류에 끼지 못할 것임을 알았노라고 말했다.

그 다음부터 인생은 그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를 가장 못 견디게 하는 건 불쑥불쑥 불우한 어린 시절의 상처가 기억날 때와 누가 옆에서 대학 얘기를 꺼낼 때였다. 그 두가지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는 자기 인생이 계속해서 꼬여가는 것의 원인도 거기서 찾았다. 자신이 그토록 불우한 어린 시절만 보내지 않았어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만 했어도 지금처럼 살진 않았으리란 한탄 속에 그의 인생의 모든 문제가 축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얘기는 과거라는 질긴 괴물에 발목을 잡히는 게 어떤 건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흔히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만약 그때 내가 이러저러 했더라면’ 하고 과거를 가정해 보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더 어리석고, 더 무서운 건 그런 가정에 매달려 현실을 외면하고 온갖 문제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닐까.

김씨의 예가 그 중 하나다. 만일 그가 자기 인생이 꼬여가는 이유를 과거 탓으로만 돌리지 않았더라면, 스스로를 삼류 인생이라며 일관되게 냉소적인 태도를 갖지 않았더라면, 그의 삶은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것 역시 과거를 가정하는 게 되나?)

아무튼, 우린 누구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생각은 바꿀 수 있다. 과거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끝까지 시도해서 해내야 하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도대체 끊임없이 과거를 주절거리며 그런 걸로 골치를 썩이는 존재가 인간 말고 어디 있겠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한 책에 나온 작가 토마스 만의 말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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