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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화제도서/파리에서]임준서 '전쟁 묵상록, 역사의…'

입력 | 2001-12-07 18:28:00


철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지난 9·11 미국 테러사태가 발생한 직후, 그의 전쟁 여행답사기(?)를인 ‘전쟁 묵상록, 역사의 악과 종말’(그라세)을 탈고했다.

그는 펜과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를 뛰어 다니며, 강요된 전쟁들에 대한 증언을 기록했다. 철학자라기보다는 리포터 같은 문체로, 모랄리스트이기보다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는 유럽의 보스니아, 아프리카의 수단, 앙골라, 부룬디, 아시아의 스리랑카, 파키스탄, 남미의 콜롬비아 등 세계의 ‘회색 지대’를 두루 돌며, “암흑의 구덩이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생생히 전하고자 한다. 작가는 세계의 변방에서 그가 직접 목격한 ‘잊혀진 전쟁들’을 통해 전쟁의 현대적 의미와 이미지를 찾으려는 듯하다.

이 수필집은 2001년 봄 르몽드 신문에 연재됐던 ‘전쟁수첩’을 토대로 전쟁에 대한 그의 사색과 여담을 모아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는 야만성과 야수성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과 독자에게 깊은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의 한 대목에서 그는 ‘전쟁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해묵은 질문을 던진다. 왜 오래 전부터 작가들은 전쟁을 매력적인 문학 소재로 즐겨 다뤘을까? 작가들은 문학작품 속에서 전쟁을 옹호하지는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전쟁의 영웅적 이미지를 흠모하는 것은 아닐까?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 7차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던 프랑스의 연대기 작가 쥬웽빌, ‘전쟁과 평화’의 작가 톨스토이 등이 남긴 전쟁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우리는 전쟁을 마치 인류가 꼭 경험해야 하는 본질처럼 느끼게 된다. 전쟁은 운명과의 결투이며, 인간의 한계를 샅샅이 들추어내는 싸움의 입문서라고나 할까.

본질적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문학 안에,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우리 삶의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여기는 일종의 ‘전쟁 미학’이 만들어진 것이다. 마가렛 미첼, 헤밍웨이, 샤를르 페귀, 셀린느, 최인훈, 조정래 등 작가마다 전쟁을 대하는 태도가 각양각색이지만 전쟁은 혁명과 함께 오랫동안 작가들에게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대량학살의 도살장이 되면서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에서 깨어난 작가들의 반전(反戰) 태도도 뚜렷해졌지만, 그럼에도 영웅주의의 유혹은 남아있다.

레비는 작가들이 전쟁을 ‘영웅화’시키려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평화에 지나치게 이상적인 이미지를 주려는 태도에도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다. 실상 두 태도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전쟁이란 지나치게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조급함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회가 이미 불완전하고 잘못되어 있음을 수용할 때, 계속적인 타협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준서(프랑스 LADL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