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길(崔鍾吉) 전 서울대 법대 교수가 타살됐음을 시사하는 중앙정보부 간부급 요원의 진술이 확보됨에 따라 최 교수 의문사 사건을 중정이 조작 은폐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와 함께 당시 수사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급물살 타는 조사〓그동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최 교수 사건을 놓고 고문치사나 고문을 피할 목적 또는 모욕적 수사 방식에 항거한 투신자살 등으로 조사 방향을 맞춰 왔다.
그러나 이를 뒤집을 수 있는 진술이 나옴에 따라 위원회의 조사 초점은 최 교수가 창 밖으로 던져질 당시 생존해 있었는지에 맞춰지고 있다.
고문치사를 은폐하고 이를 추락사로 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숨진 최 교수를 밀어 버렸을 가능성에 위원회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문도 남는다. 위원회는 진술을 한 간부급 요원이 수사 라인의 핵심 중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최씨를 비상계단에서 밀었다는 수사관도 이 사람의 지휘를 받았다.
그렇다면 간부급 요원이 이 사실을 담당 수사관에게서 직접 듣지 않고 한 사람을 건너 들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이 요원이 다른 진술도 했지만 아직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파장과 전망〓만약 타살로 확인될 경우 중정의 조작과 은폐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당시 중정 고위 간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위원회는 당시 중정 이후락(李厚洛) 부장과 김치열(金致烈) 차장에게 4일 소환장을 보냈지만 두 사람 모두 건강상의 이유로 출석할 수 없다고 통보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타살로 결론나더라도 당시 중정 간부들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가 지나 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위원회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에 관한 국제조약’을 원용해서라도 혐의가 드러나면 법적 처벌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최 교수 의문사 사건〓최 교수는 서울대 법대에 재직하던 1973년 10월 16일 당시 중정 감찰실 직원이던 동생 종선씨와 함께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의 참고인 자격으로 중정 남산분실에 자진 출두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출두 사흘 만인 19일 오전 1시45분경 남산분실 구내에서 의문의 변시체로 발견됐다.
중정은 약 1주일 뒤인 25일 간첩단 사건을 발표하면서 최 교수에 대해 “서독 쾰른대 유학중 북한에 포섭돼 평양에서 20일간 간첩교육을 받았으며 이를 자백한 뒤 양심의 가책을 느껴 화장실 창문을 통해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88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의 고발로 재조사를 했지만 진상을 밝혀내지 못했으며 유족들은 지금까지 계속 진상 규명을 요구해 왔다.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