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002시즌 프로농구가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이 때에 문득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슈터들에 대해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60~70년대 한국을 아시아 최고의 팀으로 이끌었던 신동파.
때는 1969년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결승전. 한국은 당시 아시아 최강이었던 필리핀과 결승에서 만나게 된다.
우승을 장담한 필리핀은 한국과의 결승전을 전국에 생중계하며 축포를 터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기 시작되자 경기는 그들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국팀의 슈터 신동파가 상대 수비수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무려 50득점을 기록했던 것.
필리핀의 수비수가 신동파를 막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지면 3명이나 5반칙을 당했지만 그 누구도 신동파의 슛을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스코어는 95-86 한국의 승리.
그날 경기 이후 신동파는 아시아 최고의 슈터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국내보다는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사실 신동파의 어릴 적 꿈은 농구선수가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 유니폼에 반해 야구를 시작한 그는 몇 개월 되지 않아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야구부에서 쫓겨났고 한 동안 길거리를 방황하기도 했었던 것.
그러나 우연히 농구와 인연을 맺게 된 신동파는 금새 농구에 빠져들면서 타고난 신체조건(190cm의 키)과 근성을 바탕으로 얼마되지 않아 두각을 나태내기 시작.
신동파는 당시 고등학생으로 유일하게 대표선수에 선출되며 한국 농구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70년대 중반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여자실업팀인 태평양화학 감독을 맡아 소속팀을 몇 차례나 우승으로 이끌며 지도자로서도 많은 성공을 이루었다.
이후 국가대표코치, 서울방송 총감독 및 해설위원 등을 거쳤고 현재는 대한농구협회 전무이사로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농구에만 매달렸던 그가 후배들에게 하는 한 마디 “슈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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