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에서 통용되는 투자 격언 중에 ‘재무부에 맞서지 말라(Do not stand against the Treasury)’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격언이 잘 통하지 않는다. 재정경제부의 의도가 주가에 잘 먹혀드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요즘 우리 증시에서 이 격언은 ‘외국인에 맞서지 말라’로 수정돼야 한다.
국내 증권사의 한 임원은 최근 장세와 관련해 “외국인투자자가 내는 ‘사자’ 또는 ‘팔자’ 주문의 속뜻이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외국인에게 맞서서 거래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 투자자들의 태도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거래를 쉬는 것이 낫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외국인이 사면 주가가 오르고 팔면 떨어진다’는 시중의 믿음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는 사실이 증권거래소의 통계로도 확인됐다.
외국인의 국내 증시 장악력은 가공할 수준에 이르렀다. 외국인들은 증시의 간판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의 지분 60%, 국민은행의 70%를 확보하고 있다. 개인은 물론 기관투자가들도 외국인 앞에서는 힘을 못쓰고 있다.
이는 ‘세계화 시대’의 불가피한 현상으로 선진 외국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뉴욕의 월가나 런던의 롬바드가에 자국 자본만 모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의 여의도에는 이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우선 우리 자본시장 규모가 워낙 취약하다는 점이다. 월가의 경우 축적된 자본총량이 워낙 크다 보니 국제자본거래의 저수지 역할을 하고도 남지만 우리는 항상 충격과 종속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다.
더 큰 차이는 ‘시장의 질’ 문제다. 무슨 무슨 ‘게이트’가 증권시장을 무대로 시도 때도 없이 터지고 내부거래 고가매수 통정매매 허수주문 등 알쏭달쏭한 일들이 어지럽게 펼쳐지는 곳에서는 시장이 성숙할 수 없다. 이래서는 외국인과도, 해외증시와도 경쟁할 수 없다.
허승호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