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어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40대 후반의 사업가 K씨는 최근 3개월간 퇴근한 뒤 곧장 집에 들어간 적이 없다. 대신 그가 찾는 곳은 유흥주점. 술을 마시며 접대부와 어울리다 성관계를 가져야만 직성이 풀렸다. 아내가 눈치를 채고 울고 불며 만류했으나 일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K씨는 강박장애를 앓는 딸을 데리고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 갔다가 우연히 상담을 받게 됐았다. 정신과 전문의는 그에게 ‘섹스 중독’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상담을 받고 약물을 복용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K씨는 요즘 과거의 행각을 되풀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구의 5% 정도가 섹스 중독자인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성행위 뒤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나빠진 기분을 다시 섹스로 푸는 ‘섹스 중독의 악순환’에 빠진다.
연말연시를 맞아 술먹는 기회가 잦아지면서 마음을 ‘다잡은’ 중독자도 유혹에 빨질 가능성이 높다.
섹스 중독이라는 용어는 83년 미국의 정신과의사 패트릭 캐른스가 쓴 ‘어둠 밖으로’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섹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이지 중독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착안, ‘성욕 과잉증’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아직까지 성욕 과잉증을 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학자들은 어린 시절의 성적 충격이나 성에 대한 억압적인 성장 환경 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알코올이나 마약에 빠져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뇌의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생기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성욕 과잉증이 치료대상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일반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성행위로 병을 얻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성적 환상에 대해 강박적인 생각을 갖거나 △가정 직장 등에서 대인관계상 문제가 생기면 성욕 과잉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치료는 정신 상담과 약물 투여를 함께 한다. 증세가 약할 경우 졸로푸트나 프로작 등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심하면 항정신병약과 충동조절약을 투여하거나 남성호르몬을 억제시키는 호르몬요법을 받아야 한다.
(도움말〓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과 배치운 교수, 서울성의학클리닉 설현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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