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說法(직설법)을 싫어했던 우리 조상들이나 중국 사람들은 가능하면 점잖은 표현으로, 그것도 迂廻的(우회적)으로 말하기를 즐겨했다. 그래서 고기를 씹듯 천천히 吟味(음미)하지 않으면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하는 말들이 많다. 소위 점잖은 말이나 故事成語(고사성어)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풍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개고기’라면 순수 우리말이다. 그것을 한자로 바꿀 때 당연히 ‘狗肉’이 되어야 함에도 ‘補身湯’(보신탕)으로 바꾸어 부르는가 하면 중국사람들은 한 술 더 떠 ‘香肉’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느끼는 노린내가 그 사람들에게는 향긋한 냄새로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 북한에서는 ‘단고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 개고기를 ‘狗肉’으로 표현한 예가 없지 않다. 고사성어 ‘羊頭狗肉(양두구육)’은 ‘懸羊頭賣狗肉(현양두매구육)’의 준말로서 ‘겉으로는 양고기를 파는 척 양의 머리를 걸어 선전하고는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表裏不同(표리부동), 즉 겉 다르고 속 다르게 남을 속인다는 뜻이다.
약 13년 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될 즈음 한국의 補身湯이 일약 세계의 話頭(화두)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수천 년 전통의 고유음식을 시빗 거리로 삼은 것이다. 우리로서는 불쾌하기 그지없었지만 大事를 앞둔 처지라 잠시 體面(체면)을 접었던 때가 있었다. 그 補身湯이 내년 월드컵을 앞두고 또 다시 서구 인사에 의해 云謂(운위)되고 있는 모양이다.
일국의 음식문화는 민족의 삶을 반영하는 것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된다. 그래서 민족마다 각기 다른 음식이 존재하게 된다. 에스키모인이 물개를 잡는 즉시 눈알을 파내어 윗사람에게 바치는 것이나 펄펄 뛰는 활어를 그 자리에서 회 떠먹는 일본인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힌두교도들의 눈으로 보면 문명적인 서양인은 하나도 없으며 무슬림은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이 시빗 거리가 될 수야 없지 않은가.
한국의 補身湯을 두고 프랑스의 모 여배우가 비방하고 있는 모양이다. 자기네 음식문화도 그리 문명적이지 못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던데….
펄벅은 중국을 이해하는 急先務(급선무)로 중국의 음식을 이해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 여배우,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어디 補身湯을 한 번 먹어볼 의향은 없는지 되묻고 싶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