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종영된 MBC 주말드라마 ‘그 여자네 집’에서 평범한 속물로 등장해 기존의 ‘왕자’ 이미지를 절반 쯤 벗어던진 차인표(34). 이제 그가 ‘왕자’ 허물벗기의 마지막 소품으로 선택한 것은 엉뚱하게도 전기 밥통이다. 그리고 그 무대는 지난달 초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 촬영 중인 육상효 감독의 영화 ‘아이언 팜’(iron Palm·철사장)이다.
철사장은 소림사 무승(武僧)들이 뜨거운 모래에 손을 꽂는 수련법. 차인표는 자신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애인 지니(김윤진)가 그리울 때마다 뜨거운 모래 대신, 김이 펄펄 나는 전기 밥통에 손을 담궈 괴로움을 잊는다. 이것만으로 모자랄 때는 호루라기도 불어댄다.
미국 할리우드 인근의 촬영장에서 차인표는 양아치풍의 가죽 재킷을 입고 밥통을 든 채 영화를 찍고 있었다.
“이번 영화는 내 이미지 변화에 일종의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셈이죠. 가끔은 ‘이렇게 변해도 되나’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영화 속 그가 지니를 찾아나서는 과정은 엽기 행각의 연속이다. 지니를 찾기 위해 우여곡절끝에 미국에 온 그는 소주없이는 하루도 못 견디는 지니의 술버릇만 믿고 로스앤젤레스의 소주방을 뒤진다. 이런 코믹한 줄거리에 대해 차인표는 “웃음이 60%이고 페이소스가 있는 뭉클한 대목도 40%쯤 된다”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미국 생활과 이 영화의 느낌이 비슷해요. 저는 뉴저지에서 뉴욕 맨하튼 금융가까지 매일 4시간 넘게 기차로 통근하면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돈을 벌려고 했지만 결국 행운은 번번히 저를 피해갔죠. 하지만 계속 매달리는 방법 밖엔 없었어요.”
영화 ‘아이언 팜’은 자금난으로 촬영이 1년 이상 미뤄지고 ‘영화를 끝내기 힘들겠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차인표는 “그동안 ‘짱’ ‘닥터K’ 등 영화에서 계속 실패했는데 이번 만큼은 아무래도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내년 봄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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