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은 저보다 (이)충희형이 낫고 패스나 드리블은 (강)동희가 잘하죠.” 겸손의 표현일까. 그러나 이 말을 한 주인공이 허재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 말에서 그만의 독특한 자신감을 읽는다. 천부적인 실력은 물론 농구에 대한 열정과 승부욕까지 겸비했으니 다른 선수들과 같은 잣대로 비교하지 말아달라는 자부심이다.
허재. 열성팬이 아니더라도 이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농구를 떠올린다. 프로농구 원주 삼보의 선수 겸 코치인 그는 36세의 나이에도 아직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성인농구의 대표선수다.
대학 시절 태극마크를 단 허재는 국내는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로 인정받았다. 중앙대에서 김유택 한기범 등과 호흡을 맞춰 실업 선배들을 압도하며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그는 기아자동차의 유니폼을 입고 이들과 함께 무려 여섯 번이나 실업농구를 제패했다. 프로 출범 후 기아의 원년 우승을 이끈 것도 바로 그였다.
실업 최우수 선수 세 번, 베스트5에 여섯 번, 프로에서도 97~98년 프로농구 대상 2연패, 97~98년 챔피언 결정전 MVP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당연히 한국의 농구스타 계보에는 김영기-신동파-이충희의 뒤를 이어 허재의 이름이 거론된다. 오히려 선배들보다 한 차원 높은 기량을 보유한 선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뱀으로 보신했다’는 허재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 그의 자존심에는 상처가 될지 모르지만 98년 나래로 이적하기 전 기아를 준우승으로 이끌며 MVP에 오른 때를 ‘마지막 불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않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 때문에 풀타임 출장은 생각도 못하게 된 지 오래고, 근육통 탓에 다리를 온통 붕대로 싸맨 채 뛰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좋아하던 술도 끊고 훈련도 어느 때보다 충실히 한 허재는 올 시즌 몇 경기에서 젊은 선수를 능가하는 활약을 재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전 같으면 멋진 돌파를 성공했을 기회에 블로킹을 당하고, 승부처에서 쉬운 슛을 놓쳐 패배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일각에선 “더 이상 체면 구기기 전에 옷 벗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허재는 그럴 생각이 없다. 그간 쌓아온 성과에 흠집이 날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용산고 시절부터 ‘농구천재’라는 말을 귀따갑게 들어온 허재지만 정작 그는 ‘천재’로 기억되기보다 ‘승부사’로 남고 싶어한다.
허재에 대한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은 그의 눈부신 성적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전성기를 지나고도 끝까지 남아 코트를 달리는 기질 때문이다. 허재, 그는 ‘진짜 농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