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6월13일)는 월드컵 기간(5월31일∼6월30일) 중에 치르기로 정해져 있다. 과연 법정선거일대로 선거를 치르는 게 좋은가, 아니면 한달 정도 앞당겨 월드컵 전에 선거를 실시하는 게 좋은가. 여야가 이 문제로 현재 팽팽히 맞서 있다. 여당 측은 그동안 월드컵을 준비해온 단체장들이 경기를 치르는 것이 행정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정선거일을 지키자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월드컵과 지방선거를 같은 시기에 치를 경우 단체장들이 월드컵 운영이나 안전대책보다는 지방선거 승리에만 신경쓴다며 조기 실시를 주장한다. 그러나 선거시기를 놓고 여야가 내세우는 명분의 이면에는 월드컵이 몰고 올 ‘애국적 정열’ 등이 ‘여당 프리미엄’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우려에 대한 각각의 타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찬성/ "법정선거일 지켜야 혼란없다"▼
내년 월드컵축구대회와 지방선거가 중복되니까 한나라당 등 일각에서는지방선거를 앞당겨 실시하자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월드컵대회의 성공적 개최는 우리 국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민주정치의 기본인 지방선거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 두 가지 행사는 어느 한쪽에 무게중심을 둘 수 없을 만큼 모두 중요하다. 따라서 지방선거 일정을 앞당겨 중복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리고 중복으로 인한 문제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첫째, 선거일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제34조에 의거한 것으로 ‘지방의회 의원 선거 및 지방자치 단체장의 선거는 그 임기만료일 전 30일 이후 첫번째 목요일’로 지정되어 있다. 민주당은 법정선거일을 지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월드컵대회 일정은 국제축구연맹에서 결정한 것이고, 선거일은 민주당 정권 출범 전인 1998년 2월6일에 개정된 것이다. 법정선거일은 여권의 당리당략에 따른 선거일 지정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따라서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임의로 변경하지 않는 것이 민주발전을 위해서도 좋다.
둘째, 현재 월드컵대회에 대한 준비는 테러대책을 포함해 차근차근 잘 진행되고 있으며 개막일인 5월31일 이전에 모두 끝나게 되어 있다. 지역적으로 보면 10개 도시에 국한되어 있다. 지방선거는 전국 전지역에 해당되는 것이며, 선거운동 개시일 전에는 사전선거운동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월드컵 준비기간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셋째, 선거일 당일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두 경기(서울, 수원)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것도 오후 3시반에 시작한다. 투표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월드컵 경기 때문에 투표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직접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넷째, 선거기간 중 월드컵 경기가 모두 22개 예정돼 있는데 그 가운데 15개가 야간경기다. 선거운동은 주간에 주로 하게 된다. 따라서 선거운동 및 선거엔 별로 지장이 없다.
다섯째,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5월로 앞당겨 실시한다면 낙선 단체장이 행사 준비를 주관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그로 인해 월드컵 준비가 소홀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5월 선거의 경우 행정 공백이 7주나 된다. 반면 6월 선거는 2주 정도의 준비기간을 갖기 때문에 훨씬 합리적이다.
여섯째, 5월 선거를 하려면 선거일 180일 전에 기부행위 제한기간 개시가 미리 발효되었어야 하므로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이것은 신인들의 진출 기회를 상대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일곱째, 6월은 농번기여서 곤란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6·27선거, 6·4선거를 통해 원만하게 선거를 치러냈다. 지방선거는 법정선거일에 하는 것이 옳다.
정세균(새천년민주당 정치개혁특위 간사·국회의원)
▼반대/"월드컵 성공 위해 조기선거를"▼
내년은 국가적 대사와 국제행사로 날이 새고 질 것이다. 6월에 월드컵축구대회와 지방선거, 8월에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9월에 부산아시아경기, 12월에 대통령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특히 월드컵대회(5월31일∼6월30일)와 지방선거가 겹치는 것이 문제다.
두 가지 국가 행사의 일정이 겹치기 때문에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와 지방선거의 원만한 실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가 대단히 어렵게 된 특별한 사정이 발생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내년 지방선거는 예정보다 한 달 앞당겨 실시되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첫째, 두 국가적 행사로 국민적 역량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월드컵이 개최되는 도시가 10여 개에 불과하다고 하나 10대 도시의 인구가 2460만명으로 전체 국민의 52%에 이르고, 직접 해당되는 자치단체도 전체 자치단체의 34%나 되어 사실상 전 국민이 치르는 행사다. 또 한 도시에서 치러지는 올림픽과 달리 월드컵은 한달 동안 10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매일 2게임씩 개최되기 때문에 장내 월드컵은 조직위가 한다 하더라도 교통 숙박 관광 등 자치단체들이 맡아야 할 장외 월드컵 준비가 너무나 중요하고 복잡하다.
둘째, 이번 월드컵은 그 어느 때보다 테러발생의 위협이 큰 대회다. 월드컵 하나만 하더라도 사회분위기가 들뜨기 마련인데 월드컵 개막(5월31일) 전에 대선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선거까지 치러야 한다면 사회전반은 복잡하게 돌아갈 것이다.
셋째,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행사가 아니라 각종 산업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안겨줄 사업이다. 32개국의 선수와 임원진, 1만명이 넘는 취재진, 그리고 40만∼50만명의 관광객들과 연인원 420억원의 세계인들이 한국의 경제, 사회, 문화의 수준을 공동개최국인 일본과 비교해서 한달 동안 지켜보는 평가기간이다. 그러나 이 기간중 선거가 치러지게 되면, 본질적으로 선거가 갖는 특수성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대립, 갈등 조장 등 선거과열로 인한 혼탁한 사회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넷째, 그렇지 않아도 낮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는 지방선거의 투표율이 월드컵으로 인해 더 낮아진다면 지방선거 실시 자체의 의미마저 찾기 어려운 결과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월드컵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6월13일에 낙선한 단체장의 경우 행사준비와 뒷바라지에 성의를 다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끝으로 이미 월드컵조직위원회도 선거시기를 앞당겨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있고, 최근 실시된 여러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도 예외 없이 70% 전후의 국민들이 선거시기 조정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떠나서 선거시기를 조정해주는 것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한국정치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 국민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허태열(한나라당 지방자치 위원장·국회의원)